[분수대] 집단행동의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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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고 독일은 패전국이다. 그런데 1960년대 서독은 날로 번성했고, 영국 경제는 허우적댔다.

제반 여건이 비슷했던 두 나라의 경제가 종전(終戰) 이후 크게 다른 궤적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맨서 올슨(1932~98)은 '기득계층의 유무(有無)'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올슨은 65년에 낸 책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이해집단의 파워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해친다고 갈파했다. 예를 들어 몇몇 자동차 회사가 카르텔을 형성해 가격을 담합하거나 로비집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유리한 국가정책을 이끌어내긴 쉽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자동차 고객이 한데 뭉쳐 자동차 회사에 맞서 싸우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전체로선 크지만 각자에게 돌아올 이익은 미미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길 꺼리는 것이다. 소수의 이해집단이 사회 전체에 해롭지만 그들 집단에겐 유리한 과실을 얻어내는 배경이다.

그는 82년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소수 그룹의 집단행동의 결과를 제시한다. 소수 기득계층의 집단행동은 국가의 경제적 활력을 소진시킬 때까지 계속되고, 이들 기득계층은 전쟁 같은 대재앙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청소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진 독일에선 이 같은 청소가 이뤄졌지만,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물리적 피해를 보았을 뿐 구체제는 온존했기 때문에 이후 경제적 성과가 달랐다는 게 올슨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최근 영국 경제는 무난한 행보를 계속하는데 독일 경제가 비틀거리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독일이 통일과정에서의 부담으로 허덕이는 측면도 있지만, 올슨의 이론을 대입해 노조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강력했던 노동조합 등 기득계층의 폐해가 누적된 결과라고 볼 만하다. 대조적으로 80년대 중반 '철(鐵)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노조와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면서 소수 이해집단의 논리를 분쇄했다.

올슨은 국민이 위기를 깨닫고 개혁을 받아들일 때에만 전쟁 같은 대재앙 없이 소수 집단의 발호를 제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98년 3월 그의 사망 직후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도가 이 같은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은 올슨 덕분"이라고 추모했다. 우리는 지금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