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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 진행자 여럿이듯 탈중심 ‘리좀 건축’ 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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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23면

[도시와 건축] 시대적 흐름 반영

층간 구분이 어려워 경계의 모호성을 보여 주는 롤렉스 센터 내부.

층간 구분이 어려워 경계의 모호성을 보여 주는 롤렉스 센터 내부.

라디오스타 건축

필자는 ‘라디오스타’라는 예능프로를 즐겨 본다. 예전의 TV프로그램은 한 명의 MC가 사회를 보고 이끌어 갔었다. 한 명 더 있어 봐야 진행을 보조하는 여성 MC가 있는 정도였다. 방송인 허참이 진행하는 ‘가족오락관’,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장학퀴즈’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라디오스타는 특이하게도 4명의 MC가 있다. 김국진·윤종신·김구라, 얼마 전까지 규현 이렇게 네 명의 MC가 티격태격하면서 프로그램을 이끈다. 이처럼 최근 추세는 라디오스타처럼 여러 명의 쇼호스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런닝맨’ ‘1박2일’ ‘해피투게더’가 그런 스타일이다.

일본 가나자와 미술관이 대표적 #중앙홀 없고 불규칙한 전시장들 #강북 골목길처럼 얼기설기 연결 #1·2층, 복도와 방 구분 안되는 공간 #롤렉스 센터는 경계 모호성 반영

이렇게 여러 명의 MC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은 현대사회의 탈중심 현상을 보여 주는 한 예이다. 과거에는 어느 것 하나가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되는 식의 수직적 위계가 있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여러 개의 중심이 있는 수평적 구조가 특징이다.

이처럼 탈중심의 시대적인 흐름은 최신 건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일본의 ‘가나자와 미술관’이다. 기존의 미술관은 중앙홀이 있고 거기서 연결된 중앙복도가 있고 복도를 중심으로 전시장들이 붙어 있는 형식을 가진다. 반면 가나자와 미술관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전시장이 불규칙적으로 흩어져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딱히 중앙홀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없다. 이 박스들의 간격도 제각각이어서 복도들은 마치 강북의 골목길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다.

이러한 골목길 같은 관계망을 어려운 말로 ‘리좀’이라고 부른다. 리좀은 감자나 고구마 같은 줄뿌리 식물의 뿌리모양을 지칭하는 말인데, 건축에서는 골목길 망처럼 여러 갈래로 엮여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을 설명할 때 말한다. 가나자와 미술관의 평면에는 중앙홀도 없고, 여러 개의 방들이 위계가 없이 흩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여러 명의 MC가 사회를 보는 라디오스타와 같다. 이 미술관은 SANNA라는 건축설계사무소가 디자인했다. 이들의 다른 작품인 ‘모리야마 하우스’의 평면과 독일에 있는 ‘졸버레인 학교’의 창문 모양에서도 탈중심의 구성이 보인다. 과거 건축에서 창문은 바닥에서의 높이도 일정하고 위층과 아래층 창문의 위치도 줄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졸버레인 학교의 입면 속 창문은 그 크기와 위치와 간격이 제각각이다. SANNA의 건축은 이처럼 탈중심의 구성을 공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탈중심의 흐름을 보여 주는 가나자와 미술관.

탈중심의 흐름을 보여 주는 가나자와 미술관.

경계의 모호성

라디오스타가 여러 명의 MC로 정신없는 진행을 보여 준다면 ‘마리텔’이라는 예능프로는 한술 더 뜬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가 실시간 댓글을 올리면서 호스트의 행동을 유도한다. 마리텔은 시청자가 작가이자 MC가 되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인과 시청자와 제작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디오스타가 ‘탈중심’의 현대사회를 보여 준다면 마리텔은 현대사회의 ‘경계의 모호성’을 보여 준다. 현대사회에서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동시에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그 공간이 화장실인지 아니면 사무실인지 모호해진다.

우리는 지금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하지만 카페에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 카페는 친구와의 만남의 장소도 되고, 도서관도 되고, 사무실도 될 수 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친구와 채팅을 하면 그 공간은 사무실이면서 동시에 카페도 된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공간이 동시간에 여러가지 기능으로 사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바일기기의 발전으로 특정 공간이 어느 하나만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하나가 다중적인 기능을 가진다. 경계의 모호성은 공간과 기기를 넘어서 인간에게까지 확대된다. 점점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고, 노인과 청년의 구분도 점차 사라진다. 적어도 패션 상으로는 구분이 잘 안 간다. 나이가 들어도 꽃중년들은 배가 안 나온다. 20년 전에 ‘미시’라는 신조어가 나오더니 지금은 50대의 영화배우 김성령씨는 20대와 외모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계의 모호성은 건축에서는 층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하나의 큰 공간에 여러 개의 다른 기능이 중첩되어서 사용되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과거에는 복도와 방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었다면 이 새로운 공간에는 벽이 없어서 복도와 방의 구분이 모호하다. 이쪽에서는 책상에서 일을 하고 옆으로 사람이 다니고 의자 배치를 다르게 하 면 큰 세미나실이 되는 식이다.

3층 높이 서고를 경사지 램프로 연결해 한 층에 모든 책이 놓인 공간구성을 보여 주는 시애틀 도서관.

3층 높이 서고를 경사지 램프로 연결해 한 층에 모든 책이 놓인 공간구성을 보여 주는 시애틀 도서관.

이러한 경계의 모호성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롤렉스 센터’이다. 이 건물에서는 층간구분이 어렵다. 1층을 걷다 보면 2층으로 올라가게 되고, 또 걷다 보면 다시 1층으로 내려온다. 평면상으로 어디까지가 1층이고 어디서부터가 2층인지도 모호하고, 어디가 강당이고 어디서부터가 전시장인지, 어디가 복도이고 어디가 방인지 구분이 없다. 층간의 구분, 방과 복도의 구분이 없는 공간구성이다.

이러한 경계의 모호성을 처음으로 보여 준 작품은 ‘요코하마 페리터미널’이다. FOA라는 건축설계사무소가 국제공모전을 통해서 선보인 이 디자인은 90년대 중반에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도 각각의 층은 마치 주차장 램프처럼 연결되어서 층간의 구분이 모호하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에 있는 ‘시애틀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의 서고 부분은 마치 경사지 램프로 연결된 주차장 건물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는 3층 높이의 서고지만 경사지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방문객이 책을 찾을 때 계단을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산책하듯이 걸으면서 모든 책을 다 검색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 층에 모든 책이 다 놓인 공간구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정신과 건축공간

창문 크기와 위치, 간격이 제각각인 졸버레인 학교. [사진 위키미디어]

창문 크기와 위치, 간격이 제각각인 졸버레인 학교. [사진 위키미디어]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학문 간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그래서 통섭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기계와 인간의 구분도 모호해지게 만든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과거에는 모든 것들이 인간 중심이었다면, 현대사회는 동물을 인간과 비슷한 급으로 바라보는 가치관이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동물을 우리에 가두는 동물원을 비판하고 동물의 권리도 주장한다. 하라리 교수는 이러한 동물의 권위 상승을 인공지능의 발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지능으로 동물과 차별화되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이 퀴즈게임에서 인간을 이기고, 바둑에서도 이기는 시대가 되었다.

더 이상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라는 독보적인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지능으로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 인간을 지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동물과 같은 계단에 서 있으라고 말한다. 인간은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해 주었던 종교의 권위도 없앴다. 인간은 점점 동물과 동등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동물이 된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동물의 존엄성을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동물과 인간이 비슷해지는 이러한 시대에 한쪽에서는 ‘기술적 인본주의자’들이 인간을 기계와 동화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일론 머스크는 뇌와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함으로써 인간의 지능적 한계를 없애려고 한다. 기계가 우리 위에 있으니 인간을 기계와 묶으려는 시도다. 스마트폰에서 시작된 기계-인간 동화의 움직임은 언젠가는 인간의 뇌가 인터넷과 연결되는 시대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어느 방향이든 인간은 동물과 기계의 사이에서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계의 모호성이 마리텔같은 예능프로에서도 나타났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TV방송매체에서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방송은 여러 명이 보기 때문이다. 방송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반영한다. 대중의 요구는 곧 그 시대의 정신이다. 그래서 방송프로그램에는 시대정신이 반영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최초의 디자인은 한 명의 건축가의 머리에서 나올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 디자인이 건축되어 우리 눈에 보이려면 공사비 대출을 해 주는 은행가·건축주·시공자·허가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방송과 마찬가지로 건축도 여러 명의 공통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지어지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사는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국민 전체의 건축적 이해와 가치관의 수준이 반영된 것이다. 좋은 도시에 살고 싶은가? 나부터 좋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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