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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빼닮은 근대5종, 그래선지 재미도 5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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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진화가 근대 5종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그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26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승리관에서 펜싱 훈련을 했다. [신인섭 기자]

정진화가 근대 5종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그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 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26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승리관에서 펜싱 훈련을 했다. [신인섭 기자]

‘근대 5종(Modern Pentathlon)’은 국내에선 생소하기 짝이 없는 스포츠다. 그러나 올림픽 종목 중에선 ‘가장 올림픽다운 스포츠’로 꼽힌다. 이 종목은 전쟁 중에 전령(傳令·부대 간 명령이나 중요한 정보 등을 전달하는 사람)이 산 넘고 물 건너면서 필요했던 전투술(펜싱·수영·승마·사격·육상)을 종합해 만들어졌다. 근대 5종을 직접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1863~1937) 남작은 “근대 5종을 하는 사람은 이기든 지든 우수한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말했다.

진화하는‘멀티 플레이어’정진화 #국내 선수 400명 비인기 설움 뚫고 #세계선수권 개인전 사상 첫 우승 #“한 달 전 감격 떠올리면 가슴 쿵쾅” #매일 하루 8시간 단내 나게 훈련 #LH 33년째 지원, 정상권 노크 큰힘 #“쫄지 않고 도쿄올림픽 금 꼭 딸 것”

다양한 종목을 소화하는 만큼 필요한 능력도 많다. 체력은 기본이고, 집중력과 지구력·순발력 등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근대 5종 등록 선수가 4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최근엔 세계 정상권을 넘보고 있다. 유럽의 체격 좋은 선수들을 따돌리고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선수까지 나타났다. 세계 스포츠계에서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로 떠오른 사나이, 바로 정진화(28·LH)다.

지난달 세계선수권 개인전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에 선 정진화(가운데). [사진 대한근대5종연맹]

지난달 세계선수권 개인전에서 우승한 뒤 시상대에 선 정진화(가운데). [사진 대한근대5종연맹]

정진화를 26일 한국체대에서 만나 근대 5종 선수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지난달 2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총점 1400점으로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정진화는 “그날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근대 5종은 하루에 5개 종목을 모두 치러서 변수가 많다”며 “내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믿기지 않았다. 우승한 날엔 흥분이 가시질 않아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근대 5종은 5개 종목을 하루에 모두 치른다. 지난 2009년부터는 겨울스포츠 바이애슬론(사격과 스키를 결합한 종목)처럼 사격과 육상을 통합해 펜싱→수영→승마→복합경기(사격+육상) 순서로 경기를 한다. 자신이 강한 종목에서 최대한 많은 점수를 얻어야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정진화는 이번 세계선수권 내내 1위를 지켰다. 안창식 LH 감독은 “첫 종목인 펜싱에서 최대한 앞으로 치고나가자는 전략이었는데, 진화가 펜싱에서 1위에 오른 뒤 경기를 편하게 했다”고 말했다.

근대5종 종목인 수영, 승마, 레이저런(사격+육상), 펜싱순으로 경기복을 입은 정진화. 신인섭 기자

근대5종 종목인 수영, 승마, 레이저런(사격+육상), 펜싱순으로 경기복을 입은 정진화. 신인섭 기자

중학교 2학년 때 초·중학생들이 하는 근대 3종(사격·수영·육상)을 처음 시작했던 정진화는 그저 달리기를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울산광역시 대회에서 입상한 적은 있지만 엘리트 체육을 한 적은 없었다. 근대 5종이 뭔지도 몰랐다. 그러나 정진화의 운동 신경을 눈여겨 본 신승일 현 울산시청 감독의 권유를 받고 이 생소한 스포츠에 입문했다. 정진화는 “수영·펜싱 등 새로운 종목을 배워나가면서 근대 5종이란 스포츠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7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이제 한국 근대 5종의 간판선수로 떠올랐다. 200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한 데 이어 세계선수권에서도 2012년과 15년 두 차례 개인전 3위에 올랐다. 2012·2016년 계주와 2015년 단체전에 이어 올해 개인전 우승까지 차지한 정진화는 한국 선수론 세계선수권 최다 우승자로 기록됐다. 정진화는 “근대 5종은 힘든 스포츠가 아니다. 5개 종목마다 매력이 각각 다르다. 그래서 근대 5종은 다른 종목에 비해 5배 더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정진화의 하루 스케줄은 온통 운동뿐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10시 취침 전까지 최소 8시간 이상 운동한다. 아침 식사 전엔 육상·사격을 하고, 식사 후엔 수영을 한다. 점심 식사 뒤엔 펜싱과 승마를 4시간가량 하고, 저녁 식사 후엔 체력 보강 훈련을 한다. 그는 “추석 연휴가 올해 열흘 가깝더라.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연휴 기간에도 훈련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제, 어떻게 순위가 뒤집어질지 모르는 게 근대 5종이다. 그래서 근대 5종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힘들단 생각은 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근대5종표

근대5종표

박상우 사장

박상우 사장

2010년 이후 한국 근대 5종은 세계 정상권을 넘보고 있다. 매년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선 2011년 이후 해마다 메달을 땄다. 지난 7월엔 세계유소년선수권에서 김우철(전북체고)이 남자 개인전, 지난달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선 김선우(한국체대)가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1985년부터 33년째 근대 5종을 후원하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LH 사장인 박상우(사진) 대한근대5종연맹 회장은 올해 열린 국내 대회에 모두 참석해 직접 선수들을 격려했다.

정진화의 다음 목표는 내년 8월 열릴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땐 개인전 은메달을 땄고, 2012년 런던올림픽 땐 11위,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선 13위에 그쳤다. 정진화는 “세계선수권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지만 자만하지 않겠다”면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도 쫄지 않고 내 실력을 발휘해서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스포츠 ‘멀티 플레이어’ 정진화는 …

●생년월일: 1989년 5월 25일(울산광역시 출생)
●출신교: 울산 삼신초-대현중-방어진고-한국체대 졸업
●체격조건: 키 1m82㎝, 몸무게 74㎏
●가족관계: 아버지 정영원(57)씨, 어머니 김은희(55)씨의 2남 중 막내
●근대 5종 시작: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주요 경력:
2008년 아시아선수권 계주 금
2012년 세계선수권 계주 금, 개인전 3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전 은
2016년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
2017년 세계선수권 개인전 금
●좌우명: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목표: 2020년 도쿄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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