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은 분배 중시하는 단기 경기부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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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신정부 소득주도성장 및 증세 정책 평가와 전망’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학회]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신정부 소득주도성장 및 증세 정책 평가와 전망’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학회]

성태윤 교수

성태윤 교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학계의 우려가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주도라는) 단어에 함몰돼 기존의 정책을 대체하는 하나의 성장정책으로 인식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학회·한국조세재정연구원·한국금융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신정부 소득주도성장 및 증세 정책 평가와 전망’ 세미나에서다. 지난 14일 제4회 국가정책포럼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장기 성장률이 아닌 단기 성장률만 높이는 경기부양론에 가깝다”고 지적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인식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경제학회 ‘신정부 성장론’ 세미나 #소득재분배, 장기 성장 못 끌어내 #재정지출 늘리면 조세 부담 증가 #기업 투자 의욕 꺾어 경제 역효과 #청년실업·노인빈곤 해결에 초점을

소득주도성장론은 중하위 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 증가→생산 확대→투자 증가→일자리 확대→소득 증가’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구상이다. 소득을 성장의 산물로 보는 주류 경제학의 견해 차이가 커 논란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날 성 교수는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 소득주도성장은 소득 증가를 통해 성장(장기적 소득증가)을 이룬다는 것으로 동어반복”이라며 “학계에서 소득주도성장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논의는 소득분배, 특히 노동소득분배율과 관련해 진행됐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소득재분배나 노동소득분배 개선이 경제 성장에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성장의 핵심은 아니다”라며 “소득불평등 해소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이 더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돕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성장정책으로 접근하면 호의적인 정책 의도와 관련 없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효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성 교수는 “노동소득분배 성장론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으로 소득을 이전해 경기부양 효과를 끌어올리는 단기 경기관리정책”며 “이 과정에서 기업이나 고소득층이 이전한 조세·소득을 제외하고 추가적인 소비와 투자의 감소가 없어야 승수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투자 의욕을 꺼뜨리거나 소비 감소를 야기하면 '‘성장’과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성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나 복지 등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쪽에 재정지출이 집중되면 시장 참여자는 미래에 조세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현재의 소비나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재정지출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승수효과에 따른 추가적인 경기 회복이나 장기 성장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성 교수는 한국은 일반적인 소득불평등보다 경기침체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으로 인한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최근 정부도 ‘혁신성장 띄우기’에 나서며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혁신성장은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의 4대 중심축 중 하나였지만 소득주도성장에 밀려 주목 받지 못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수요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라면 공급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건 혁신성장”이라며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사람 중심 투자와 혁신 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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