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고집하다 성장 불씨 꺼뜨릴수도" 학계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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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의도와 달리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학계의 우려가 제기됐다. 임금 수준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면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고, 소비 축소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중하위 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소비 증가→생산 확대→투자 증가→일자리 확대→소득 증가’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구상이다. 소득을 성장의 산물로 보는 주류 경제학의 견해와 차이가 있어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학계 연이어 소득주도성장 반론 제기 #소득주도성장은 정의부터 동어반복 #성장이론 아닌 단기 부양책으로 봐야 #재정지출 확대 따른 미래 부담 증가에 #기업 투자, 고소득층 소비 감소 우려 #의도와 달리 경제 활력 떨어뜨릴수도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학회·한국조세재정연구원·한국금융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신정부 소득주도성장 및 증세 정책 평가와 전망’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성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정의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 자료사진. 김상선 기자

성태윤 연세대 교수 자료사진. 김상선 기자

그는 “경제 성장은 장기적인 소득의 증가를 의미하는데 소득주도성장은 소득 증가를 통해 성장(장기적 소득증가)을 이룬다는 것으로 동어반복”이라며 “학계에서 소득주도성장이란 명시적 용어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논의는 소득분배, 특히 노동소득분배율과 관련해 진행됐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임금주도 성장론, 재분배 성장론, 노동소득분배 성장론 등의 개념으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성 교수는 “소득재분배 내지는 노동소득분배 개선이 다른 요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경제 성장에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성장의 핵심은 아니다”라며 “소득불평등 해소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다른 핵심 요소들이 더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돕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단어에 함몰돼 기존의 정책을 대체하는 하나의 성장정책으로 인식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정책으로 접근하면 호의적인 정책 의도와 관련 없이 오히려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성 교수는 “노동소득분배성장론은 소득을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으로 이전해 더 높은 경기부양효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단기 경기관리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장기 성장률이 아닌 단기 성장률만 높이는 경기부양론에 가깝다”는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인식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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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성 교수는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조세나 소득을 이전하는 정책이 고소득층의 이전된 조세·소득을 제외하고 추가적인 소비와 투자를 감소시키지 않아야 승수효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재분배 정책이 기업이나 고소득층의 투자 의욕을 꺼뜨리거나 소비 감소를 야기하면 애초에 목표로 한 ‘성장’과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성 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이렇게 분석했다.

“정부가 직접 공무원을 채용하거나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승수효과를 높이는 것과 거리가 있다. 우선, 소득이 낮거나 재산이 적은 순서로 공무원과 공공부문 채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저소득층 소비를 자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공무원 채용과 같이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에 대한 재정부담이 존재해서 지속적인 재원이 필요한 부문에 재정지출이 집중되면, 가계나 기업 같은 시장참여자들은 미래 조세 부담이 증가될 것으로 예측해 현재의 소비를 감소시키거나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재정지출 자체가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승수효과에 따른 추가적인 경기회복은 제한적이고 특히 장기 경제성장은 요원해진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기업과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성 교수는 “임금 인상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주로 폐쇄경제에서 유효한 방식으로, 개방경제에서는 수출 기업의 국제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성 교수는 한국은 일반적인 소득불평등보다 경기침체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으로 인한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반적인 소득불평등 개선정책이나 특정 생산요소(노동)를 지향하기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2017 세제개편 평가 및 세제개편 방향’ 보고서를 통해 “복지지출 증가 등으로 향후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지만 정부의 재원 대책은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부분만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보고서에서 “2017년 세법개정안 수준으로는 국정과제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에도 부족하다”며 “특히 지출 구조조정으로 60조원 이상을 조달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말했다. 2017년 세수 증가효과가 5조5000억원에 달하는 등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증세안이지만 전체 국정과제 소요재원의 12.4%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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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206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151.8%로 높아질 수 있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경고를 인용하면서 현재 기준으로 국가 세수를 30~40조원(GDP 대비 1.5~2.5% 수준)가량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증세가 필요하지만 단일 세목이나 부자 증세 방식만으로 전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세목이 일정한 부담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박 교수는 주택 임대소득 강화와 주식 양도차익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법인세는 복잡한 세율 체계부터 정리해야 한다”며 “200억원 이상 기업엔 25%를 적용하고, 2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에 20%를 매기는 식으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가가치세는 면세범위 축소부터 시작하되 점진적인 세율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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