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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인 1000만 학살 … 벨기에의 흑역사

중앙일보

입력

레오폴드 2세(좌), 손목이 잘린 콩고 어린이들(우)

레오폴드 2세(좌), 손목이 잘린 콩고 어린이들(우)

박준형이 벨기에에서 인종차별과 폭행을 당한 사건이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되면서 벨기에의 과거 인종차별 사례와 잔혹한 식민지 수탈의 '흑역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박준형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장면. [사진 JTBC 방송화면]

박준형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장면. [사진 JTBC 방송화면]

지난 2015년 10월 MBC '세바퀴'에서 황재근은 "벨기에는 인종차별을 '내성적'으로 한다"며 "패스트푸드점에서 햄 두 개, 치즈 두 개를 주는 건데 한 개씩만 넣어줬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공격적인 말투를 갖게 된 게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황재근이 벨기에에서 인종차별 당했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MBC 방송화면]

황재근이 벨기에에서 인종차별 당했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MBC 방송화면]

2015년 7월부터 8월까지 방송한 tvN 예능 '가이드'에선 대놓고 인종차별적 행동을 한 벨기에 청소년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권오중 등 출연진이 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벨기에 여학생들이 눈매를 양쪽으로 찢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사진 tvN 방송화면]

[사진 tvN 방송화면]

벨기에 청소년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인종차별적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tvN 방송화면]

벨기에 청소년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인종차별적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tvN 방송화면]

TV프로그램을 통해 벨기에 사람들의 인종차별 전력이 하나둘씩 까발려지면서, 이들의 부끄러운 역사도 재조명됐다.

벨기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을 상대로 무자비한 악행을 저질렀다. 인류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잔혹한 식민지 통치로 기록되고 있다.

천연자원부국인 콩고가 여전히 세계 최빈국 자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천연자원 매장량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24조 달러라는 추정치가 나올 정도로 천혜를 누리는 나라가 콩고다.

콩고의 개발이익만 골고루 나눠도 온 국민이 풍요롭게 살 수 있지만, 현실은 지옥과 같다. 콩고는 2017년 IMF 기준 GDP 83억 달러로 세계 138위를 기록했다.

이는 130년 이상 지속한 내전 등 유혈사태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약 600만명이 희생됐다. 고문과 신체 절단, 성폭행 등 범죄도 아무렇지 않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탓에 콩고는 여전히 폭력 사태와 가난함의 연쇄고리를 쉽사리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레오폴드 2세.

레오폴드 2세.

재앙은 서양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을 결정한 1884년 베를린회의 이후 시작됐다. 베를린회의를 통해 콩고의 운명을 틀어쥔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상상 이상의 폭정으로 콩고의 잔혹한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콩고 현지 약탈은 유명한 탐험가 헨리 스탠리가 대리했다. 그는 콩고의 추장들을 선물로 매수하고 "땅 소유권과 통치권을 영원히 넘긴다"라고 적힌 문서에 서명하게 했다. 한반도 11배나 되는 현재의 콩고 영토는 이렇게 빼앗겼다.

이 문서 하나로 콩고는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소유로 전락했다.

콩고 영토는 레오폴드 2세의 거대한 사유 재산이 됐고, 콩고인들은 노예로 끔찍한 노동환경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했다.

레오폴드 2세의 잔학무도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콩고인의 고무 채취 과정이다. 당시 고무는 검은 황금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다.

산업혁명의 시기, 당시 한창 수요가 폭증하던 자전거·자동차 타이어, 전선 절연재 등에 고무가 쓰였다. 품귀현상을 빚은 탓에 공급물량이 모자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모든 원주민이 투입돼도 고무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이에 레오폴드 2세는 무장 군인을 동원해 원주민을 무력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혼 여성을 감금하고서 남편에게 석방 조건으로 고무 할당량을 제시했다. 만약 남편이 거부하면 곧바로 부인을 사살했다.

손목이 잘린 콩고 주민.

손목이 잘린 콩고 주민.

고무 할당량을 채우지 못 하면 한쪽 손목을 절단했다. 목표량이 2~3차례 미달하면 나머지 한 쪽 손목을 자르고 목숨까지 빼앗았다.

손목이 잘린 콩고 주민.

손목이 잘린 콩고 주민.

반항하는 주민에게는 무자비한 총질이 가해졌다. 이런 야만적 행위는 손이 잘린 어린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며 드러났다. 이때부터 서방세계의 압박으로 1908년 콩고의 통치권은 레오폴드 2세 개인에게서 벨기에 정부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미 레오폴드 2세의 지배 기간에 최소 1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학살, 착취의 대가로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외국으로 빼돌렸다.

레오폴드 2세는 1900년 16세로 50살 이상 어린 프랑스 매춘부 카롤린 라크루아를 알게 됐다. 1902년 부인이 사망하자 카롤린은 레오폴드 2세의 정부가 된다. 레오폴드 2세는 카롤린이 임신하자 프랑스에 있는 친정을 오갈 때 불편하지 않도록 철도를 신설했다.

카롤린 라크루아[연합뉴스]

카롤린 라크루아[연합뉴스]

그리고 이 둘은 1909년 가톨릭 신부가 인정한 결혼식을 올렸다. 며칠 후 레오폴드 2세는 카롤린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서 눈을 감았다.

콩고는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으나 기나긴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 레오폴드 2세가 뿌린 증오의 씨앗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여현구 인턴기자 yeo.hyu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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