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살해 현장에 없었던 공범이 살인죄 인정된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8살 초등생 살해' 주범 K(16)양(오른쪽)과 공범 P(18)양. [연합뉴스]

'8살 초등생 살해' 주범 K(16)양(오른쪽)과 공범 P(18)양. [연합뉴스]

"공범 P양(18·재수생)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주범 K양(17)은 징역 20년에 처한다."

인천 초등생(피살 당시 8세) 살인 사건의 주범과 공범으로 기소된 두 10대 여성 피고인에게 법원이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법정형의 최고한도를 선고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허준석)는 지난 2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죄로 기소된 주범 K양에게 징역 20년을,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P양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또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P양이 범행 현장에 없었는데도 그의 살인죄를 인정했다. 공범인 P양의 살인죄를 인정할 객관적 증거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를 (공범이) 했다"는 주범 진술이 합리적으로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재판을 담당한 허준석 부장판사는 "여러 차례 고심했다"며 "범행의 잔혹함,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실행행위 분담 여부나 소년범죄의 특성을 고려하여 책임의 경중을 가릴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P양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사건 당시 CCTV 영상. [연합뉴스]

사건 당시 CCTV 영상. [연합뉴스]

P양은 애초 K양과 살인 범행을 함께 계획하고 훼손된 A양의 시신을 건네받아 유기한 혐의(살인방조 등)로 구속기소 됐다. 그러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K양이 "P양의 지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살인 등으로 죄명이 변경됐다.

초기 경찰 조사에서 P양을 감싸던 K양은 3번째 검찰 조사부터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P양의 진술 조서를 직접 확인한 후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P양이 살인을 지시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범행 후 '역할극인 줄 알았다'는 P양의 진술은 거짓이다. 사건 며칠 전 P양은 폐와 손가락을 달라고 했었다"고 실토했다. 이에 검찰은 살인 방조죄 등을 적용해 P양을 재판에 넘겼다.

지난 6월 공범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K양은 "살인 범행은 혼자 했고 공범은 시신만 건네받았다"는 취지의 기존 진술을 뒤집고 "P양이 사람을 죽이라고 했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검사도 당시 "처음 듣는 내용"이라며 "거짓말이 아니냐"고 K양에게 물었고, 그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결국 이날 선고공판에서는 K양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P양이 살인의 공모공동정범임을 인정했다.

K양이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자신의 기존 주장과 배치될 수 있는 "살인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한 것은 유력한 심증을 갖게 하는 근거라고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검찰 측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K양의 진술이 거의 유일하다"고 전제하면서 "K양의 진술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구체화했다. K양과 P양 사이에 범행과 관련한 사전교감이 있었음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K양은 우발 범죄라는 본인 진술의 대전제가 흔들릴 수 있는 대화 내용을 먼저 진술하기 시작했고 법정에 와서는 P양과의 구체적인 공모 사실도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P양의 진술과 관련해서는 "범행 당일 K양과의 통화내용 등 사건의 핵심을 구성하는 사실관계에 대해 일관성이 없거나 불분명하게 진술한다"고 했다.

8살 초등생 살해 공범인 P양. [연합뉴스]

8살 초등생 살해 공범인 P양. [연합뉴스]

인천지법 관계자는 "공범인 P양은 소년범이고 실행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범행의 잔혹성과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무기징역형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K양과 P양은 재판 내내 태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고 때도 큰 움직임은 없었다. 이 둘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K양은 올해 3월 29일 낮 12시 47분쯤 인천시 연수구의 한 공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 여아 아이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한 뒤 흉기로 잔인하게 훼손한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P양은 K양과 함께 살인 계획을 공모하고 같은 날 오후 5시 44분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만나 초등생의 훼손된 시신 일부가 담긴 종이봉투를 건네받아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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