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유엔대사, 트럼프 연설 직전 뛰쳐나가 … 이용호 ‘말폭탄’ 반격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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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20일(현지시간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단에 오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미국 NBC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보이콧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유엔 총회에서 맨 앞자리를 배정받은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비난을 예상하고 아예 현장을 피한 것이다.

북 체제 특성상 김정은 비난 못 견뎌 #ICBM·SLBM 발사 등도 배제 못해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에 빗댄 뒤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totally destroy)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정상회담이나 자신의 트위터 등을 통해 북한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 온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국제무대에서 최고 수준의 경고를 보낸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북한대사를 추방하고 무역을 축소하는 등 국제사회의 싸늘한 분위기를 고려해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을 예상하고 자 대사가 자리를 뜬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내용은 북한 당국에 여과 없이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도 국제사회의 심각한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고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일 것”이라고 했다.

20일 오후 현재 북한의 공식 반응은 없다. 하지만 공식 국제무대에서 김정은에 대한 비난과 조롱에 대해 북한이 반발 수위를 높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최고지도자(김정은)를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종교와 유사한데 김정은의 영상(이미지)을 흐리거나 그에 대한 비난을 좌시하는 걸 가장 큰 범죄로 여긴다”며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어떤 식으로든 강경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 외무성 등 북한 당국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향한 말폭탄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 22일 예정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이 주목되는 이유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이미 핵 보유 종착역에 거의 다다랐다고 하는 만큼 핵무기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위협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면서 미국에 ‘역공’할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국정의 가이드라인인 올 초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언급했고 미국도 본토 공격에 대해 민감해하고 있는 만큼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군사적 움직임이 예상된다”며 “한·미 정보 자산을 총동원해 북한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별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 연휴와 당 창건기념일(다음달 10일)을 전후한 이벤트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다른 나라나 테러단체로 기술을 확산하겠다는 식의 핵확산 카드로 위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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