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예측 어려운 자율투표, 국민의당엔 ‘양날의 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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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낙마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국민의당 ‘자율투표’가 현재로선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안에도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당론 강요 않고 각 의원 의사 존중 #진영논리, 정치적 흥정 차단 기대 #인사 등 무기명 투표에만 적용 #“정치 이득 노린 기회주의” 비판도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8일 “당 지도부가 정략적으로 입장을 정하고 당론투표를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당리당략이자 구태정치”라며 “국민의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은 인사 관련 인준투표를 자율투표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일대오를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당론투표’와 달리 자율투표는 의원 개개인이 알아서 투표하는 것이다. 당론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김이수 부결에서 확인했듯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정치적 흥정이나 주고받기는 차단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치력이 발휘될 공간도 협소해질 수 있다.

본래 ‘자율투표’는 유별난 게 아니다. 법에 명기돼 있다. 국회법 제114조 2항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있었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보수·진보 간 극단적 대립이 빚어지는 와중에 개인의 의사보단 하나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논리가 강했다. 당 지도부가 정하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행태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튀었다간 자칫 왕따당할지 모른다. 다음 공천은 물 건너간다”는 문화가 의원의 독자성을 가로막았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미국이 양당제임에도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당의 입장과 반대되는 투표 행위, 즉 크로스보팅(crossvoting·교차투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율투표’가 획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변화를 줄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치열하게 토론하되 최종 결정은 헌법기관인 의원 각자가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용호 정책위의장도 “일단 당론이라고 정해 놓고 지도부 마음대로 해온 게 여태 국회의 현주소”라며 “더 이상 당론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각에선 “정치적 소신·철학보단 국민의당의 처한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율투표’를 택한 거 아니냐”는 진단도 나온다. 진보(더불어민주당)와 보수(자유한국당)로 갈라진 형국에서 자율투표로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게 정치적으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기에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당 내부적으론 안철수계와 호남계로 양분돼 구심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갈등을 부추기기보다 ‘자율투표’라는 명분으로 당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국민의당은 인사 등 무기명 투표에 한해서만 자율투표를 한다는 방침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치적 이득에 따라 선별적으로 자율투표를 한다면 자칫 눈치 보기나 기회주의적 행태로 비칠 수 있다”며 “자율투표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파급력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우·안효성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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