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렇게 트렌디한 전통이라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버버리의 빈티지 체크 모자와 코트를 입은 모델.

버버리의 빈티지 체크 모자와 코트를 입은 모델.

젊어졌다. 가벼워졌다. 발랄해졌다. 9월 16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2017 9월 컬렉션을 평하자면 이렇다. 확연한 변화였다. 놀라운 건 그렇다고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버리지도 않았다. 체크와 영국적 뿌리를 내세웠지만 동시대적 감성과 최신 트렌드를 철저히 고수했다. 달라야 살아남는 패션의 정글에서, '전통의 전복'으로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버버리

더 젊어진 버버리를 확인시킨 런던 컬렉션 #고유의 빈티지 체크와 영국적 패턴 전면 활용 #오버사이즈, 복고 등 스트리트 감성에 살려

16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2017 9월 컬렉션. 다양한 체크를 활용한 스트리트 감성의 의상을 선보였다.

16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열린 버버리 2017 9월 컬렉션. 다양한 체크를 활용한 스트리트 감성의 의상을 선보였다.

젊은 감성으로 재탄생한 클래식 체크

쇼장은 250년 역사를 지닌 옛 법원 청사 건물 '올드 세션 하우스(Old Sessions House)'. 그곳에서 영국 일렉트로닉 팝의 뿌리로 80년대를 풍미한 2인조 '펫 샵 보이즈'의 사운드 트랙이 흘러나올 때부터 버버리의 변신은 예고됐다. 따라 부를 수 있을만큼 귀에 익숙한 팝송은 과거 심오하고 묵직했던 쇼장의 음악과는 선을 그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나타난 모델은 플라스틱 소재의 우비를 입고 있었다. '웬 우비?'라고 고개를 갸우뚱 할 틈도 없이 펑퍼짐한 파카와 바람막이 점퍼가 등장했다. 그것도 민트·핑크 등 쨍한 '캔디 컬러'였다. 그간 버버리의 런웨이를 군림하던 군복 스타일의 코트와 재킷 자리를 대신 꿰찼다.
이어진 런웨이는 하이엔드 브랜드가 젊음의 문화, 그리고 스트리트 패션과 만나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더 확실하게 보여줬다. 야구 모자를 쓴 모델들이 속속 런웨이를 누볐고, 낙낙하게 흘러내리는 바지와 오버사이즈 카코트(디자인이 간결한 롱코트)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어깨선과 소매가 늘어진 니트 역시 이미 눈에 익숙한 차림이었다.
스타일링도 부조화의 조화라는 '믹스 앤 매치'를 부각시켰다. 속이 비치는 얇은 드레스에 바닥을 쓸 것처럼 길고 두툼한 머플러를 두르는가 하면, 풍성한 퍼 코트에 야구 모자를 쓰는 식이었다. 또 슈퍼모델 시대를 연 신디 크로퍼드의 딸 가이아 거버와 아들 프레슬리 거버 등을 세워 '세대 교체'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얇은 롱드레스위에 니트 머플러를 길게 걸친 스타일링.

얇은 롱드레스위에 니트 머플러를 길게 걸친 스타일링.

두툼한 퍼 코트에 야구 모자를 짝 지었다.

두툼한 퍼 코트에 야구 모자를 짝 지었다.

다만 한 끗 다른 차별화 메시지는 분명했다. 전통과 뿌리를 놓치지 않았다. 버버리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체크를 전면에 내세웠다. 모자부터 코트·점퍼·팬츠까지 거의 모든 아이템에 버버리 고유의 빈티지 체크를 입혔다. 이와 동시에 스코트랜드의 부족들을 상징하는 타탄 체크 역시 대거 등장했다. 빨간 바탕의 격자무늬가 코트·머플러·토트백·망토마다 등장했다. 이외에도 버버리는 카디건·조끼·스커트 등 니트류와 양말에는 영국 스코드랜드에 기원을 둔 페어아일 무늬와 마름모꼴 아가일 무늬를 반영했다. 해외 패션매체들이 이번 컬렉션을 두고 '영국적인 모든 것을 섞은 용광로'라고 평한 이유였다.

강렬한 타탄체크를 오버사이즈 코트에 담은 의상.

강렬한 타탄체크를 오버사이즈 코트에 담은 의상.

'거리 패션의 왕' 고샤에게서 영감

버버리가 변신한 데에는 계기가 있다. 바로 지난 6월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와의 협업이다. 루브친스키는 자신의 2018 봄·여름 컬렉션에서 이 협업으로 만든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와 외투류 8벌을 이미 공개한 바 있다. 버버리의 클래식한 아이템들을 오버사이즈 스타일로 재해석하면서 그는 '스트리트 패션의 왕'이라는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당시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책임자(CCO) 크로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의 상징적 디자인을 재해석한 작업은 영국 문화 유산에 대한 엄청난 존경심을 표명한 것이자 새롭고 흥미진진하다"고 호평했다. 그리고 이를 이번 컬렉션까지 이어 갔다. 전통과 유산이라는 부담감을 털고 보다 자유롭게 영역을 확장한 시도다.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버버리가 협업한 의상.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버버리가 협업한 의상.

베일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달라지는 세계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닐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컬렉션이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었으면 했다. 세상은 점점 섞이면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밖에서 갖춰 입는 옷과 캐주얼하게 입는 옷의 구분이 덜해지지 않나." 그러면서 그는 "소셜 미디어 역시 브랜드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너무 버버리 같아서' 오히려 기피했던 빈티지 체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놓고 적용한 시도 역시 또다른 자유로움으로 해석할 만하다.

버버리의 2017 9월 컬렉션을 찾은 가수 송민호(왼쪽)와 이승훈.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가운데)와 포즈를 취했다.

버버리의 2017 9월 컬렉션을 찾은 가수 송민호(왼쪽)와 이승훈.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베일리(가운데)와 포즈를 취했다.

틀을 벗어난 다양한 시도

패션쇼는 끝났지만 여운을 채워주는 행사는 이어진다. 컬렉션이 공개 된 후 바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살 수 있는 '시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가 하나. 2016년 9월 버버리가 몇몇 업체와 가장 먼저 선보인 판매 방식으로, 이번에도 국내에서는 서울 청담동 플래그십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17일 오전부터 판매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히 컬렉션의 쇼장이었던 올드 세션 하우스에서 10월 1일까지 '여기 우리가 있다(Here We Are)'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베일리와 패션·사진 전문 서점인 '클래르 드 루앙' 디렉터이자 작가인 루시 쿠마라 무어, 그리고 영국 출신 사진작가이자 버버리 광고 캠페인을 찍은 알라스데어 맥렐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영국적인 삶의 방식과 스타일'을 주제로 축구 선수 다피드 존스, 사진가 빌 브란트 등의 사진이 공개된다. 또 맥렐란을 비롯해 고샤 루브친스키, 사진가 셜리 베이커, 영화 감독 켄 러셀 등의 미공개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베일리는 문화 패션 잡지 '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각기 다른 종족과 계금이 섬 하나에 공존한다는 걸 보여주는 기록물이자 이번 컬렉션에 영감을 준 매개체"라면서 "영국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단면을 볼 수 있다"고 이 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