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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헌재소장은 어떻게...공백 장기화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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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지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지난 1월 31일)한 뒤 223일째 소장 공백 상태를 이어 가게 됐다. 김이수(63)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11일 후보자로 지명된지 116일만에 이뤄진 국회 본회의 인준안 표결에서 국회 동의를 얻지 못했다. 헌재가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소장 인준안이 부결된 적은 없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야권 반대표 #헌재소장 공백 223일째 역대 최장 #외부서 재판관·소장 동시지명 유력 #'코드인사' 비판 대법원장 후보자도 촉각

헌재소장 후보자가 됐던 전효숙,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은 스스로 물러났다. 2006년 8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소장 후보로 지명한 전 전 재판관은 임기 6년을 새로 얻기 위해 재판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논란 끝에 후보 자격을 내려놓았다. 2013년 1월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동흡 전 재판관은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이 불거져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자 지명 41일 만에 스스로 사퇴해 본회의 표결까지 가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아쉬운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아쉬운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 후보자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헌법재판소총회 참석차 리투아니아 출장 중이다. 그의 임기는 내년 9월 19일까지여서 이론상으로는 소장 권한대행직과 재판관 업무를 계속하게 된다. 그러나 17일 귀국하는 그가 권한대행직을 계속 맡을 지는 미지수다.

김 후보자가 권한대행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후임 권한대행은 재판관회의에서 정하게 되는데 관례와 헌재 규칙에 따라 남은 7명의 재판관 중 최고참(임기가 같을 경우 연장자 순)이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후임 헌재소장 지명에도 변수가 많다. 이론상으로는 김 후보자를 문 대통령이 다시 지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따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재상정할 수 있는 건 내년 2월 정기국회 때에나 가능하다. 헌재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김이수 대행을 다시 소장 후보로 지명할 수 있지만 대행 기간이 길어지고,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나머지 현직 재판관 중에서 새 소장 후보를 선택하는 방법이 있지만, 법조계에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지명된 강일원 재판관을 제외한 6명의 재판관은 전 정권에서 지명했거나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20170608/국회/박종근]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8일 국회에서 속개됐다. 오후에 속개된 회의에는 5.18 당시 버스 운전기사로 김 후보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던 배용주씨와 헌법재판소 연구관 박대규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종근 기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20170608/국회/박종근]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8일 국회에서 속개됐다. 오후에 속개된 회의에는 5.18 당시 버스 운전기사로 김 후보자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던 배용주씨와 헌법재판소 연구관 박대규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종근 기자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명했고, 김창종‧이진성·이선애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안창호 재판관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추천을 받아 지명됐다.

강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주심을 맡아 탄핵 결정문을 썼다. 임기는 1년 남았다.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황스러운 결과지만 국회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나온 결과이므로 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고 파장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재판관이 아닌 법조인 중에서 새로운 재판관과 헌재소장을 겸직할 후보자를 지명한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현재 대통령 몫 재판관 1명이 공석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유정 변호사를 지명했지만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되자 철회했다. 새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때 소장으로 동시에 지명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헌재소장은 판사‧검사‧변호사 경력 15년 이상의 40세 이상 법조인 중에서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동안 박한철 전 소장을 제외한 역대 소장(조규광‧김용준‧윤영철‧이강국)들은 모두 재판관 지명과 동시에 소장 후보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새 후보자를 물색해 검증 절차를 다시 밟으려면 헌재소장 공석과 8인 체제 장기화라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전종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새 재판관을 지명해 소장으로 임명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이지만 후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소장 공백사태 장기화로 주요 심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헌재소장 후보자 인준 부결이 내일(12일)부터 청문회가 시작되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법원 안팎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대법원장 후보자는 야권으로부터 “문재인식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바른정당 의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사람을 대법원장에 지명한 예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동의안 표결에서 부결된 사례는 19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지명한 정기승 대법관 때가 유일하다. 정 전 대법관은 군사정권에 협조한 인사였다는 야권의 반발로 국회 인준을 얻지 못했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이수 후보자가 심각한 결격 사유가 없는데도 정치적 이유로 부결된 것을 고려하면 김명수 후보자의 임명 절차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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