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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정부 주도 ‘한국관 마케팅’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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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창균
이창균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창균 산업부 기자

이창균 산업부 기자

“삼성전자·LG전자뿐 아니라 30여 개 중소기업이 전시회에 참가한다.”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2017’을 앞두고 정부는 이처럼 중소업계 참여를 부각하는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4일(현지시간) IFA 현장을 둘러본 기자는 의아했다. 도무지 우리 중소기업 부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구촌 1600여 개 업체가 모인다는 곳에 정보기술(IT) 강국의 중소업체는 예년과 달리 자취를 감춘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궁금증은 ‘한국관’에서 풀렸다. 한국관은 중소벤처기업부(옛 중소기업청)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2003년부터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 마련한 국가전시관이다. 중소기업들은 IFA에 참가하면서 주 전시장에 일반 부스를 꾸리거나 한국관에 함께 들어가는 방식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IFA에서 각국의 국가관이 주 전시장 내에 자리 잡지 못하고 차로 20~30분 걸리는 ‘스테이션 베를린’이라는 행사장에 별도로 차려졌다는 점이다. 국내 중소기업과 관련 단체 30여 곳의 부스는 대부분 한국관에 차려졌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IFA 조직위는 당초 박람회장 안에만 유치해 오던 국가관을 올해 ‘글로벌 마켓’이라는 이름을 붙여 외부로 뺐다. 국가관 호응도가 낮아 바이어 발길마저 뜸해서다. 그 자리를 ‘IFA 넥스트(NEXT)’라는 이름의 유망 스타트업 테마 공간으로 대체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A기업은 주 전시관에서 먼 곳으로 밀려났기 때문인지 올해 바이어 계약 성사가 2건에 불과했다. 이 회사 대표는 “국가관 형태의 ‘코리아 마케팅’을 앞장세우는 건 바이어 니즈와 거리가 먼 방식인데 정부 지원이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계가 뚜렷한 한국관에 그래도 중소업체들이 몰려드는 건 부스 비용의 50%를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이 열악한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해외 유명 전시회에 부스를 차리기 쉽지 않아서다. 박람회 현장 변화를 소홀히 다룬 ‘한국관 지원 정책’이 우리 중소기업을 해외 바이어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셈이다.

한 국회의원은 최근 정부예산 결산 국회에서 “정부가 지난해 해외 전시 사업에 수천억원을 썼지만 효율적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실효성 떨어지는 사업이 관행적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는지 들여다보자”고 꼬집었다. 정부 주도 지원사업 ‘한국관 마케팅’의 비용편익분석이라도 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창균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