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행정구역 개편, 광역도시권 중심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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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치권이 행정구역 개편을 들고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현재 '특별시.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의 세 단계인 지방행정체계를 '광역도시→기초행정구역'의 두 단계로 줄이려 한다. 도를 없애는 대신 전국을 서울특별시와 인구 100만 명 이하 광역도시 60여 개로 재편하고, 광역도시 아래 지방행정업무를 맡는 기초행정구역을 둔다는 구상이다. 한나라당은 특별시.광역시.도는 폐지하고 전국을 70여 개 광역도시로 나눈다고 한다.

여야는 행정구역 개편의 명분으로 '현행 지방행정체계의 비효율성'을 든다. 사소한 허가 하나 받는데도 행정 절차가 중복돼 도와 시를 쉴 새 없이 왕복해야 하고, 교통 발달로 실제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달라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지역사업용 예산이 시.군.구별로 잘게 쪼개지기 때문에 광역 단위의 지역사업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여야는 행정구역 체계가 줄어들면 '나쁜 것을 우리 동네에 둘 수 없다'는 님비 현상이나 관할권 다툼 양상도 잦아들 것으로 전망한다.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으나 현실적 제약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고속철과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기술을 갖춘 오늘날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행정체계를 고집한다는 것은 무리다. 이제는 행정구역 개편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따라 검토해야 할 몇 가지 점을 짚어본다.

첫째로 행정구역 개편은 무엇보다 광역도시권 중심으로 해야 한다. 여야가 내거는 광역도시는 몇 개 행정구역을 인위적으로 묶어 놓은 '도.농 통합시' 성격이 짙어 부자연스럽다. 현재 국가적으로 사용하는 광역도시권과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부산 광역도시권은 중심도시 부산과 부산 주변의 몇 개 행정구역이 포함된 정주생활권의 특성을 지닌다. 광역도시권이 정주생활권이 되는 것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온 자연스러운 삶의 공간적 표출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우리나라 국토 공간구조는 수도권, 부산권, 대구권, 광주권, 대전권, 마산.창원.진해권 등 예닐곱 개의 광역도시권과 몇십 개의 대.중.소규모 도시체계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이뤄진 생활공동체로서의 정주생활권은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정체성이 녹아 있기에 통합성과 역사성을 지닌다.

이러한 동질적 생활양식은 어떠한 논리로도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삶의 질의 속성을 보인다. 따라서 국토 공간구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추세를 감안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도.농 통합시'적 광역도시를 만드는 것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둘째로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개발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광복 이후 우리는 어느 사이엔가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일부 정치권의 분위기에 휩쓸려 반목하고 편 가르기 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의 복안대로 도 단위가 없어지는 행정구역 개편이 진행된다면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지역단위의 정치적 편 가르기 양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닐곱 개의 광역도시권은 각각 수백만 명의 인구 규모를 지닐 것이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력을 갖도록 유도하면 상당한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예견된다.

셋째로 행정구역 개편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혹시나 여당이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중대선거구제로 전환, 소선거구제에서의 문제점을 만회하려 한다거나 야당이 호남에서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서 행정구역을 개편하려 한다면 국민을 참으로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각 지역이 독자적인 지역 특성을 갖게 돼 각 지역도 살고 종국적으로 국가의 번영도 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도시지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