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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아니다”...대북 전방위 압박 주도하는 아베

중앙일보

입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0일 밤 다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통화하고 북한 문제를 협의했다. 두 정상 간 통화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29일 오전에 이어 이틀 연속이다. 두 통화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라 압박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조야 일각과 한ㆍ중의 조기 대북 협상론을 견제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압박을 통해 북한의 정책을 바꿔나가겠다는 것이다. 양국이 대북 석유 금수가 포함된 강력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추진하는 것은 그 일환이다.

트럼프와 이틀 연속 통화 대화론 견제 #한국ㆍ호주ㆍ영국 정상과도 공조 다져 #고노ㆍ오노데라도 미 측과 잇달아 통화 #북 위협 증대 위기감 속 일본 역할 키워

29일 북한 미사일 이후 이틀 연속 전화 통화를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29일 북한 미사일 이후 이틀 연속 전화 통화를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29일 통화는 미국 공식 입장에 반영됐다. 아베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 직후 백악관은 ‘모든 옵션’ 구절이 든 백악관 성명을 발표했다. 30일 통화는 트럼프가 "대화는 답이 아니다"는 트윗을 한 직후 이뤄졌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일 정상 간의 찰떡 공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아베와의 통화 때마다 되뇌는 "동맹국 일본과 100% 함께 하겠다"는 언급은 빈말이 아닌 듯하다.

 아베가 대북 전방위 압박 외교를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내정 혼란, 태풍 하비로 완벽한 대북 대응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중국 역할론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다. 아베 내각의 대미 협의는 다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31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대북 압박 강화에 합의했다. 오노데라는 이지스함 탑재 요격 미사일을 지상에 배치하는 시스템(이지스 어쇼어)의 조기 도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도 이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통화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직전인 27일(현지시간)에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국가안보국장이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담했다.

 아베 요청으로 30일 이뤄진 한·일 정상 통화는 한·미·일 3국 대북 공조 체제를 다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미 정상 간 통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아베가 3국 정상 간 중개역을 맡는 모양새다. 아베는 한·미·일의 틀을 넘어 대북 포위망을 넓혀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후에는 우방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와의 연대도 확인했다. 말콤 턴블 총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나가기로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일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함께 31일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일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함께 31일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아베는 이날 방일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만찬을 하고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압박을 위해 긴밀히 연대키로 했다.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더 역할을 해나가야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두 정상은 31일 오후 공식 정상회담을 하고 대북 공동 대응에 합의한다. 일본 정부는 양국 결속 차원에서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특별 회의에 메이 총리를 초청했다. 외국 정상의 일본 NSC 참석은 2014년 토니 애벗 호주 총리에 이어 두번째다. 고노 외상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ㆍ영국ㆍ호주ㆍ이스라엘ㆍ이집트 외교장관과 통화했고 현재 중ㆍ러와도 통화를 조정하고 있다.

 아베 내각의 이런 움직임은 북한 미사일의 실질적 위협과 맞물려 있다. 현재 일본을 사정권에 둔 북한 미사일은 약 1000기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이 예고 없이 일본 상공 위로 미사일을 쏘면서 일본의 위기 의식은 커졌다. 미국 내에서 나오는 북핵 용인, 현상 유지론을 견제하는 측면도 있다. 다른 하나는 국내 정치다. 지지율이 추락한 상황에서 외교로 만회해보려는 생각도 엿보인다.

 아베가 2012년 말 이래 장기 집권하면서 각국 지도자들과 쌓은 친분, 경륜도 대북 압박 외교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일 정상이 한층 더 가까워진 점도 북핵 문제에서 일본 역학론을 키워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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