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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 하루 전기료만 4400만원…비트코인 캐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란의 어쩌다 투자] 
비트코인 생태계 주무르는 채굴업자들

비트코인, 30일 4700달러 사상 최고가 #거래소 빗썸 거래대금, 코스닥 넘어서 #채굴 위한 연산장치로 GPU 수요 늘면서 #용산 전자상가선 GPU 동이 나는 사태도 # #세계 최대 채굴업체는 비트메인 #채굴장 한 곳서만 하루 전기료 4400만원 #우지한 대표 말에 비트코인 가격 좌우 #“5년 내 비트코인 10만 달러” 전망도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 가격이 4700달러를 돌파, 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가상화폐 정보 제공 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한때 비트코인 가격은 4707.55달러를 기록했다. 시가총액은 770억 달러(약 87조원)로 불어났다. 페이팔ㆍ넷플릭스는 물론이고,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763억 달러, 29일 종가 기준)도 넘어섰다. 31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현재 466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상 이미지 [사진: coindesk.com 제공]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상 이미지 [사진: coindesk.com 제공]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최근 라이트코인ㆍ대시 등 다른 알트코인(Alternative+Coin,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가상화폐를 통틀어 일컫는 말) 등도 강세를 나타내면서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도 30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가상화폐 전체 덩치는 1670억 달러(약 188조원)까지 커졌다. 시스코(1577억 달러)ㆍ인텔(1628억 달러) 등 전통 정보기술(IT) 기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가상화폐 가격 급등에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 열기도 폭발했다. 19일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는 하루 거래량이 2조6000억원에 달했다. 코스닥 거래 대금을 웃도는 수치다. 가상화폐 정보 업체 코인힐스에 따르면 빗썸은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12% 안팎을 점유하며 세계 1위 가상화폐 거래소의 자리에 최근 등극했다.

비트코인을 위시한 가상화폐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뜨겁지만, 그 관심은 오직 ‘거래(trading)’에만 집중돼 있다. 가상화폐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인 ‘채굴(mining)’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채굴은 가상화폐, 특히 비트코인 생태계를 떠받치는 중요 요소다. 채굴업자들은 비트코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며 지난 8월 1일 비트코인에서 파생된 비트코인캐시(BCH)를 탄생시켰다. 도대체 채굴은 무엇이며, 채굴업자들은 누구이길래 이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까.

◇채굴 때문에 PC방 주인이 울었다?

채굴은 컴퓨터를 이용해 일종의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작업이다. 문제를 풀면 비트코인 매매 거래가 기록되는 ‘블록’이 만들어진다. 블록은 10분마다 생성되고 채굴자들은 블록을 만든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블록 하나를 만드는데 성공하면 현재는 12.5비트코인을 받을 수 있다.

채굴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비트코인의 발행량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약 2140년까지 총 2100만개의 채굴이 끝나면 새로운 비트코인의 생성이 중단된다(이런 희소성이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설명하는 강력한 근거 중 하나다). 생성 원리가 달러와 같은 지폐처럼 정부 마음대로 발행(issuing)하는 게 아니라, 매장량이 정해진 금을 캐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채굴이라 부른다.

채굴자들은 컴퓨터 문제 풀이를 위해 연산장치로 그래픽카드(GPU)를 활용한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에 채굴자들이 늘면서 GPU 수요가 폭증했고 미국 GPU 생산업체인 엔비디아 주가는 올 들어 50% 가까이 올랐다. 국내에서는 용산 전자상가에 GPU가 동이 나, GPU 가격이 폭등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로 출시된 게임을 지원하기 위해 컴퓨터 속도를 높여야 하는 PC방 사장님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평소의 배를 주고 GPU를 사야 했다.

초기에는 개인 컴퓨터로도 채굴이 가능했지만, 남아 있는 비트코인의 숫자가 줄면서 문제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최근까지 채굴된 비트코인은 1650만개 정도다. 얼마 남지 않은 비트코인을 캐기 위해선 더 많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나는 가상화폐로 3달 만에 3억 벌었다’의 저자 빈현우 씨는 “비트코인은 현재 개인 채굴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중국 업체가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채굴 업체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비트메인의 중국 어얼둬쓰 채굴장 내부. 자료: 쿼츠

비트메인의 중국 어얼둬쓰 채굴장 내부. 자료: 쿼츠

비트코인 채굴의 대부분은 중국계 ‘마이닝풀(mining pool)’ 차지다. 채굴 효율성은 컴퓨터 연산능력이 커질수록 좋아지기 때문에 혼자 채굴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 하는 게 똑같은 장비를 쓰고도 더 많은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 마이닝풀은 일종의 광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별 광부(채굴자)들이 특정 광산(마이닝풀)에서 같이 비트코인을 캐고, 이를 각자의 능력(컴퓨팅 파워, ‘해시 레이트’라고 부른다)을 제공한 만큼 배분받는 식이다.

가상화폐 지갑 관리 사이트인 블록체인닷인포에 따르면, 최근 24시간 동안 채굴을 가장 많이 한 상위 5개 마이닝풀은 모두 중국계다. 앤트풀(18.6%),  BTC닷톱(15%), BTC닷컴(10.2%), F2풀(10.2%), 비아BTC(9%) 등이다.

◇비트메인, 비트코인 생태계의 ‘큰 손’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회사는 비트메인이다. 2013년 전직 사모펀드 매니저였던 우지한과 반도체 설계 전문가인 미크리 전이 공동 창업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두고 있고, 최대주주는 케이만도 군도에 등록된 신탁이다.

비트메인의 중국 어얼둬쓰 채굴장. 자료: 쿼츠

비트메인의 중국 어얼둬쓰 채굴장. 자료: 쿼츠

자체 채굴장을 돌리는 것 외에 비트메인은 채굴기도 판다. 단순히 GPU 여러개를 연결하는 게 아니라 비트코인 채굴에 최적화된(ASIC, 주문형 반도체) 채굴기를 개발했다. 전 세계 채굴기의 70%가 비트메인이 생산하는 제품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에 따르면, 최근에는 인공지능(AI)를 접목한 채굴기도 개발을 끝냈다.

비트메인은 이렇게 판 채굴기를 활용해 세계 3대 마이닝풀 중 두 곳인 앤트풀과 BTC닷컴을 이끌고 있다. 이들 마이닝풀이 채굴하는 비트코인은 전체 채굴량의 30% 안팎에 이른다. 곧, 전 세계에서 매일 생산되는 비트코인의 30%는 비트메인의 영향력 하에 있다는 의미다.

비트메인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비트메인의 초청으로 중국 네이멍구 차지구의 어얼둬쓰(鄂爾多斯ㆍ오르도스)에 자리한 채굴장에 초청받은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는 “이 채굴장의 하루 전기요금만 3만9000달러(약 44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비트메인의 중국 어얼둬쓰 채굴장. 자료: 쿼츠

비트메인의 중국 어얼둬쓰 채굴장. 자료: 쿼츠

앞서 우지한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어얼둬쓰 채굴장의 하루 매출만 25만 달러”라며 “조만간 미국에 3억 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채굴장을 짓겠다”고 말했다. 비트메인은 이 외에도 윈난성 산악지방, 신장자치구 등에 저렴한 전기요금을 이용해 채굴장을 운영하고 있다.

비트메인이 2013년에 생긴 비교적 후발 채굴업체인데도 시장을 장악한 건 2014~2015년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 근처에서 200달러 선으로 급락했던 ‘비트코인 곤궁기’에도 버텨냈기 때문이다.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후 애널리스트, 사모펀드 매니저 등을 거쳐 벤처 캐피탈(VC) 회사에 다니던 우지한은 2011년 비트코인의 원리를 담은 ‘사토시 백서’를 접하고, 비트코인에 완전히 매료됐다. 지금까지의 화폐 제도를 완전히 뒤집는,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누구에 의해서도 통제받지 않는 디지털 화폐의 출현에 열광했다.

당장 그간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비트코인을 샀다. 주변에선 우지한이 미쳤거나 사기를 당했다고 조롱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1달러에도 못 미쳤다. 이후 급등, 2년 뒤엔 900달러까지 올랐다.

매매로 비트코인에 눈을 뜬 우지한의 시야에 채굴이 들어왔다. 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비트코인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을 전부 팔아 2013년 비트메인을 공동 창업했다.

6개월만에 개발을 끝내고 그해 11월 첫 번째 채굴기를 출시했다. 그런데 3개월 뒤인 2014년 2월 당시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가 해킹 피해로 85만 비트코인을 도난 당했다고 발표했다(후에 해킹에 따른 도난이 아니라 내부자의 횡령으로 밝혀졌다). 비트코인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자료: 코인데스크

자료: 코인데스크

떨어지는 칼날은 아무도 잡지 않았다. 매달 비싼 전기료를 내 가면서 누가 채굴기를 돌리고 싶어하겠나. 우지한은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업 계획이 비트코인 가격이 비쌀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고 말했다.

경쟁업체들은 모두 사업을 접거나 파산했다. 우지한은 그럼에도 비트코인이 한 때 버블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그 무엇’이라고 믿었다. 버텨냈다. 그리고 믿음에 보답하듯 2015년 말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유일한 경쟁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동유럽 국가인 조지아에서 채굴장을 운영하는 비트퓨리 뿐이다.

◇우지한, 가격을 움직이는 남자

우지한은 비트코인 생태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다. 채굴자들은 앞서 말한 대로 블록 생성뿐 아니라, 비트코인 송금을 도와주는 대가로도 비트코인을 받는다. 비트코인 거래량이 폭증하면서 채굴자들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채굴자들이 없으면 비트코인 송금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지한 비트메인 공동 창업자. 자료: 쿼츠

우지한 비트메인 공동 창업자. 자료: 쿼츠

채굴자들의 힘은 해시 레이트로 결정된다. 우지한은 전 세계 해시 레이트의 약 30%(앤트풀과 BTC닷컴의 채굴비율)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 그가 이끄는 채굴 세력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비트코인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19일 비트코인캐시(BCH, 기존 가상화폐 중 약자를 BCC로 표기하는 게 있어 혼돈을 피하기 위해 시장에서는 BCH로 쓰는 경우가 많다)가 급등했을 때가 그랬다. 시장에서는 다들 BCH가 이더리움에서 분리된 이더리움클래식처럼 이더리움 가격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가격을 형성하다 소멸의 길로 가는 것 아니냐고 예상했다.

그런데 8월 1일 비트코인 분할 이후 침묵을 지키던 우지한이 17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남기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그는 “세그윗(SegWit)을 지지하는 풀이 BCH 채굴을 시작하면, 앤트풀은 BCH 채굴을 시작할 것이다”이라고 썼다.

이 말을 단순하게 해석하자면 앤트풀이 조만간 BCH를 채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채굴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앤트풀이 BCH 채굴에 뛰어들면 BCH 채굴량은 폭증할 수 있다. 가격 급등 가능성이 커진다.

이 트윗을 기점으로 BCH 가격은 이틀 만에 900달러를 넘어섰다. 현재는 고점에서 30% 떨어지기는 했지만 상승 전 300달러선보다는 70% 넘게 오늘 550달러선에 거래 중이다.

한 가상화폐 전문가는 “8월 1일 분할 때 보유한 비트코인 수량만큼 BCH를 지급했기 때문에 우지한도 상당량의 BCH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BCH를 버려둔 코인 취급하지는 않고 가격 조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비트코인이나 BCH 가격 흐름을 예측하고 싶다면 그의 발언을 항상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지한은 지난 7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네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길게 보면 BCH가 비트코인보다 가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곧, BCH 가격이 떨어지는 걸 두고 보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한편,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은 5년 내 10만 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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