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른쪽 왼쪽 번갈아 켜는 것은 비상 깜빡이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30일 “태평양을 향해 미사일 훈련을 많이 하겠다”고 밝혀 추가 도발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과 일본을 겨냥해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뜻을 시사한 것이다. 이날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찬성표를 던지며 한목소리로 경고한 것에 아랑곳없이 북한이 민족 공멸을 부를 핵도발 의지를 재확인한 점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북, “태평양에 쏘겠다” 추가 도발 시사 #4강 대사 ‘코드 인사’ 미덥지 못해 #‘극한 압박’ 의지 행동으로 입증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대북 압력을 극한까지 높이겠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는 도발 사흘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아베 총리와 통화하며 “일본과 100% 함께 갈 것”이라 강조해 왔다. 통화 횟수만 10차례다. 반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했을 뿐이다. 한반도가 6·25 이래 최대 위기인 상황에서 한·미 정상 간의 소통이 이런 수준이라면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북한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 핵탄두를 장착하고 대기권 재진입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완료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시간이 없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표현대로 대북 압력을 극한까지 높이고, 중국을 압박해 추가 도발을 막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노력이 실패해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으면 전쟁 아니면 북·미 간 ‘빅딜’(평화협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벼랑 끝에 몰린다. 우리로선 최악의 구도다.

김정은은 “미국의 언동에 따라 차후도 행동을 결심할 것”이라 말해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럴수록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와 대북 독자 제재 착수 등 행동으로 ‘강한 압박’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도발에 부담을 느끼고 대화에 응할 공산이 커지며, 우리가 ‘운전석’에 앉을 기회도 생긴다. 미·일 정상 앞에선 ‘강한 압박’을 다짐해놓고 돌아서면 ‘대화’를 외치는 태도로는 동맹엔 불신을, 북한엔 비아냥을 살 뿐이다. 지금은 일관되게 비상 깜빡이를 켜야 한다.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이 켜는 것은 비상 깜빡이가 아니다.

어제 윤곽을 드러낸 4강 대사 인선도 미덥지 못하다. 조윤제(주미)·이수훈(주일) 교수와 노영민(주중) 전 의원 등 모두 대선 캠프 인사들로 채워졌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외교철학을 공유하고 경륜도 풍부해 지명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초유의 안보위기 상황에서 북핵과 사드, 위안부 등 고도의 외교력이 요구되는 현안을 학자나 정치인 출신 대사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4강 주재 대사관에 해당 국가의 사정에 정통한 전문 외교인력을 전진 배치해 신임 대사들의 업무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