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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호텔·농장·풍력발전 … 배고픈 종합상사, 새 먹거리 찾아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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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출중개, 군납, 인터넷방송….

해외로 눈 돌려 신사업 개척 #과거 ‘백화점식 비즈니스’ 벗어나 #포스코대우, 미얀마 부동산 개발 #삼성물산은 캐나다서 발전사업 #일본 종합상사, 참치 양식까지 진출 #국내선 규제 걸림돌 많아 사업 제약

국내 최대 종합상사인 포스코대우가 할 수 있는 사업(정관에 명시된 사업목적)은 68종이나 된다. 출판·교육·영화배급도 할 수 있다. 올 2월부터는 철강구조물을 짓거나 국제회의·전시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게 됐다. 상사를 괜히 ‘만능 회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이렇듯 ‘열일’하는 국내 대형 상사들이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과거 ‘바늘부터 전투기까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역중개업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돈이 되지 않는다. 국내 5대 종합상사의 영업이익은 2014년 8222억원에서 지난해 7598억원으로 떨어졌다. 이에 수익성이 부진한 사업을 과감히 접고 해외를 중심으로 신사업을 개척하고 있다. 포스코대우의 신개척지는 미얀마다. 다음 달 1일 미얀마의 경제수도인 양곤에 5성급 호텔의 문을 연다. 대우그룹 시절부터 쌓은 호텔 사업을 노하우를 살렸다.

입찰부터 개발까지 포스코대우가 총괄했고, 운영은 롯데호텔이 맡는다. 포스코대우는 미얀마 가스전 사업으로 미래 먹거리를 확보했다. 미얀마의 가파른 경제 성장을 염두에 두고 올 초부터는 식량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포스코대우는 추가로 해외 자원 및 부동산 개발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국내 1호 상사인 삼성물산은 2000년대 일본 상사들의 성장 동력이 되어준 자원개발 및 발전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상사 역시 중국·오만·인도네시아에서 석탄 등 자원개발과 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미얀마의 시멘트 공장은 올해 상업생산을 시작한다. 현대종합상사는 캄보디아에서 농지 임대와 작물 재배 및 유통 등 식량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해외 사업은 아니지만, SK네트웍스도 지난해부터 패션 부문을 현대백화점그룹에, LPG충전소를 SK가스에 매각하며 비핵심 사업 정리에 나섰다.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유류 도매유통(EM) 사업도 SK에너지에 팔았다. 이 대신 렌터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SK렌터카는 지난 몇 년 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며 업계 2위(인가 차량 대수 기준)까지 치고 올랐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최근 국내 종합상사의 경영 특징은 해외 시장 확대와 사업 특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포스코대우의 계열사는 2013년 27개에서 지난해 25개로, SK네트웍스는 37개에서 23개로 줄어들었다. 사업 정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국내 종합상사들의 사업 방향은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각각 100조원 대 매출을 자랑하는 일본 종합상사들은 한국 상사의 원형이기도 하다. 미쓰비시·미쓰이·이토추·스미토모·마루베니 등 일본 5대 상사는 지난 2~3년 전부터 자원 개발을 줄이고 국내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식료품 등 원재료를 싸게 조달해 생산·유통·판매까지 일괄 처리하고 있다. 일종의 유통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중이다. 원자재 가격 하락에 보호무역주의 강화, 국가들 간에 외교적 갈등 등에 대한 대안이다.

미쓰비시상사의 경우 일본 구시모토에서 참치를 양식하고 있으며, 이를 자사의 유통망을 이용해 배송하고, 식당에 도매 유통까지 하고 있다. 또 세계 3위의 노르웨이 양식업체 서마크도 인수했다. 이토추 상사는 돌(Dole)을 인수해 통조림 제조 및 편의점 유통까지 확대하고 있다. 마루베니는 세계 3위인 미국 곡물 유통업체 가빌론를 인수해 곡물사업 확대에 나섰다. 경영 컨설팅업체 ‘제프리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5대 상사의 비(非)자원 부문 순이익은 2013년부터 자원 부문을 넘어섰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일본 종합상사들은 식량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며 “식량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지 않아 대규모 물류와 트레이딩 등 광범위한 가치사슬이 형성되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영역이 많다”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국내 상사들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규제와 반기업 정서가 상사의 사업 확대를 가로막는다. 국내에서 참치 유통이나 중고차 판매는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묶여 있어 상사들이 전향적으로 뛰어들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계열의 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일본처럼 통조림이나 편의점 사업에 뛰어든다면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비판이 먼저 제기된다. 제도적으로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많다”며 “소비자가 대형화 등을 통한 가격 인하와 품질 상승의 혜택을 볼 수 없는 상황”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30일 47개 중소기업적합업종 품목의 지정해제 기한을 연장하며 대기업의 사업 확대에 제한을 두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차별이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부 교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법제화할 경우 최근 네이버의 경우처럼 성장하지 않고 중소·중견 기업으로 남으려는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며 “현재도 3만 개 안팎의 중소기업의 정부의 정책자금에 연명하고 있어 국가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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