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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엔 절경 다도해길을 걷자

중앙일보

입력

거짓말처럼 무더위가 한풀 꺾이더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반가운 이유는 여럿이지만 무엇보다 바다 빛 역시 쪽빛을 닮아 유난히 새파래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선한 바람을 쐬며 야외로 나서기 좋은 이 가을 걷기 좋은 바다여행 길 4곳을 꼽아 소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걷기여행 코스다.

조각밭 펼쳐진 갯마을서 쉬다갈까  

경남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들판, 바다, 하늘 모두 푸르다. 청량한 가을, 걷기여행에 벗 삼기 좋은 풍경이다. [중앙포토]

경남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들판, 바다, 하늘 모두 푸르다. 청량한 가을, 걷기여행에 벗 삼기 좋은 풍경이다. [중앙포토]

경남 남해 설흘산(487m)과 응봉산(472m) 아래 경사지에 100여 층 600여 개의 논과 밭이 바다를 향해 있다. 언덕에서 보면 밭을 매는 농부의 등 뒤로 바다가 겹쳐, 꼭 절벽 끝에서 농사를 짓는 듯하다. 이 극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조각 밭을 남해 사투리로 다랭이밭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마을 이름 역시 다랭이마을이 됐다.

남해 몽돌해안, 홍현리보건소로 이어지는 걷기여행길이 다랭이마을에서 출발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남해 몽돌해안, 홍현리보건소로 이어지는 걷기여행길이 다랭이마을에서 출발한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다랭이마을에 나들이객이 물밀듯 밀려오는 때는 푸른 새싹이 피는 봄철이다. 시금치와 파가 돋아 초록 계단으로 변신한 다랭이밭이 푸른 남해와 어우러지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을녘 다랭이마을의 색감을 빚어내는 주인공은 누런 벼다. 때가 맞는다면 농기계가 들어올 수 없는 가파른 논에서 허리를 굽힌 채 벼를 베는 농부를 만나게 된다. 해안누리길 다랭이길은 다랭이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다랭이마을 전망대~몽돌해안~홍현리보건소까지 이어지는 길로, 남해 바래길 2코스 앵강다숲길의 일부 구간과 노선이 겹친다. 5.1㎞ 정도밖에 되지 않아 풍경을 보면서 걸어도 2시간이면 완주할 만하다. 다랭이마을에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많이 있어 쉬었다 가기도 좋다.

가을 정취 깃든 갈대밭

순천만은 이름 그대로만(灣)이다.남해바다가 내륙 깊숙이 파고들어간자리다.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갯벌에 너른 갈대밭이 드리워졌다. [중앙포토]

순천만은 이름 그대로만(灣)이다.남해바다가 내륙 깊숙이 파고들어간자리다.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갯벌에 너른 갈대밭이 드리워졌다. [중앙포토]

억새와 갈대는 가을에 피는 꽃이다. 그래서 억새와 갈대를 찾아 나서는 여행은 가을의 꽃놀이라 할 수 있다. 무리 지어 너울거리는 뽀얀 꽃은 가을볕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 억새와 갈대는 쌍둥이 취급을 받지만 완전히 다른 식물이다. 갈대는 물가에서만 자라고 억새는 물기가 없는 뭍에서도, 산등성이에서도 잘 자란다. 사는 곳이 다르니 억새와 갈대를 감상하러 떠나는 여행길의 행선지도 갈린다. 억새를 만나려면 산행을 감수해야 하고, 습지로 향할수록 갈대와 가까워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갈대 여행지를 꼽으라면 국내 최대 갈대 군락지 전남 순천 순천만이다. 순천 교량동과 대대동, 해룡면 등에 걸쳐 있는 순천만 갈대밭의 총면적은 축구장 130개 크기인 100만㎡에 이른다.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이사천이 합쳐져 바다에 이르는 물길이 갈대로 빽빽이 들어차 있다.

와온해변 일몰. [중앙포토]

와온해변 일몰. [중앙포토]

순천 곳곳을 훑는 남도삼백리길 중 1코스가 순천만에 조성돼 있다. 16㎞ 정도 길이 이어지는데, 이정표를 따가라면 와온을 출발해 화포로 향하게 된다. 이정표와는 달리 화포를 출발지로, 와온을 종착지로 삼을 것을 추천한다. 와온의 일몰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다. 모든 코스를 지난다면 걷는 데만 5시간 소요된다. 평지만 걷고 싶다면 해발 50m 용산전망대에 이르는 산행길은 건너뛰어도 좋다. 하지만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경치를 순천만 여행의 백미로 꼽는 이도 많으니 참고할 것.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사진 순천시]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사진 순천시]

삼치 익는 가을 거문도로 가는 까닭

거문도 녹산등대 가는 길. [사진 한국관광공사]

거문도 녹산등대 가는 길. [사진 한국관광공사]

거문도는 먼 길이다. 여수에서도 배를 타고 2시간 20분을 더 가야 닿는다. 배도 하루에 2편(7시 40분, 13시 40분)뿐이다. 그래도 가을 거문도 여행은 값어치 있다. 가을에 맛이 차는 갯것이 풍족해서다. 바다에서는 슬슬 삼치가 살을 찌우고 갯바위에는 따개비·고동·거북손·홍합·청각 등 찬거리가 넘친다. 식도락 여행 말고도 거문도의 가을이 기꺼운 이유가 또 있다. 부드러운 갯바람을 맞으며 걷기여행을 즐기기 좋다. 동도와 고도, 서도 등 섬 3개가 둥글게 모여 거문도를 이루는 데 가장 큰 섬 서도에 아름다운 걷기여행길이 있다. 언덕배기 녹산등대를 찾아가는 길이다. 길 이름도 ‘거문도 녹산등대 가는길 1코스’다.

거문도 일몰 풍경. [중앙포토]

거문도 일몰 풍경. [중앙포토]

무인등대인 녹산등대는 아무도 찾지 않아도 손죽도·초도·장도 등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비추고 있다. 이 등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풍광이 변화무쌍해 심심할 틈이 없다. 녹문정에서 시원한 남해바다의 풍광을 즐기고, 인어상 등 인어를 테마로 조성한 인어해양공원을 둘러본다. 인어해양공원 절벽 4m 높이의 살랑바위도 인상적이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면 그 포말이 마치 백마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웅장하고 아름답다하여 거문도 8경 중 1경으로 꼽힌다. 녹산등대에 다다르면 가슴이 탁 트일 만한 푸른 초원도 보인다. 서도마을에서 녹산등대를 찍고 다시 돌아오는 거리는 3㎞ 정도. 걷는 데 2시간 소요된다.

느릿느릿 계절 만끽

시간이 느리게 가는 섬 청산도. [사진 한국관광공사]

시간이 느리게 가는 섬 청산도. [사진 한국관광공사]

전남 완도군 청산도는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 city)로 인증 받은 ‘느림의 섬’이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섬 청산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법은 역시 걷기다. 그것도 경치를 즐기며 느릿느릿 속도를 죽여야 한다. 청산도를 한 바퀴 도는 길 이름도 마침 ‘슬로길’(42㎞)이다.
오늘날 청산도를 유명하게 만든 풍경은 사실 모두 봄철에 빚어진다. 노란 유채꽃이 피고 푸른 청보리가 패는 4월 청산도에 슬로걷기 축제가 열려 한적한 섬이 여행객으로 떠들썩해진다. 하지만 가을도 매력적이다. 꽃도 보리도 없지만 한적한 섬 본연의 매력이 도드라진다. 화창한 볕 아래 짙푸른 남해바다를 벗 삼아 섬 정취를 즐기면 그만이다.

남해 바다를 보며 걷는 청산도 슬로길. [사진 한국관광공사]

남해 바다를 보며 걷는 청산도 슬로길. [사진 한국관광공사]

청산도를 찾는 탐방객의 대부분은 1코스를 걸으며 영화 '서편제' 촬영지나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만을 둘러보곤 하지만, 청산도 슬로길의 진면목은 4~5코스에 있다. 4코스 출발지점인 낭길을 걸을 때는 하늘에 떠 있는 듯, 바다에 떠 있는 듯 모호한 경계선을 걷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범바위~용길로 이어지는 5코스를 걸을 때는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남해의 탁 트인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7.3㎞ 이어진 4~5코스를 모두 걷는데 3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가을 하늘 닮은 쪽빛 바다 보며 걷는 길 #다랭이밭 걸으며 남해 푸르름 담고 #순천만에서는 일몰 감상 #슬로시티 청산도와 #맛있는 섬 거문도도 걷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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