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없는 조폭…두목 한마디에 20년 우정을 찔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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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 놈은 우리 아들을 죽이지 않았을 거야….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던 놈인데 어찌 죽일 수 있단 말이야…. "

지난달 28일 경기도 성남시에서 회칼에 마구 찔려 피살된 성남 K파 행동대장 文모(26)씨의 아버지(54.식당 운영)는 25일 경찰 수사 결과가 결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찰이 文씨 살해범으로 검거한 李모(26)씨는 자신의 아들과 코흘리개 때부터 이웃에서 함께 살아온 20여년 친구로 잠자는 시간을 빼곤 거의 함께 붙어 다녔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도 함께 다녔다. 중학 2학년 때 똑같이 중퇴하고 유흥업소에서 웨이터 생활도 같이했다. 20세가 되던 해 함께 폭력조직에 들어갔다.

화끈한 성격도 비슷해 주먹세계 후배들로부터 인기가 좋았고 선배들의 신임을 받아 함께 행동대장을 맡을 정도로 흡사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심지어 몸에 용(龍)과 칼 문신도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했다. 이 때문에 폭력조직 내에서도 이들의 두터운 의리를 부러워했고 누구도 이들을 갈라놓지 못했다.

이처럼 의리 있기로 소문난 두 사람에게 '결별'의 운명이 닥친 것은 지난달 28일 새벽. 두목 李모(28)씨가 행동대장 李씨를 호출해 "조직 무게 중심이 文씨에게 쏠리고 있다. 조직을 배반하려는 文씨를 없애버려라"고 명령했다.

李씨는 두목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文씨를 살해키로 결심한 뒤 文씨의 살해시간과 장소를 정해 동료 조직원들을 성남시 수진동 실내포장마차에 모이게 했다.

이어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친구 文씨를 불러낸 뒤 일반 손님 등 1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칼을 빼들고 친구를 마구 찔렀다.

경기경찰청 김춘섭 폭력계장은 "의리보다 선배의 명령과 조직 보호를 더 중시하는 게 폭력조직의 실상"이라며 "두목이 가장 친한 친구를 시켜 '탈퇴의 본보기'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25일 영화 '친구'처럼 가장 친한 친구를 시켜 조직을 탈퇴하려는 조직원을 살해토록 지시한 혐의(살인교사) 등으로 조직폭력배 성남 K파 두목 李씨와 지시를 받고 文씨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행동대장 李씨 등 13명을 구속했다.

행동대장 李씨는 두목 李씨의 지시를 받고 지난달 28일 오전 5시20분쯤 성남시 수진동 제일시장 내 실내포장마차에서 文씨의 가슴 등 7곳을 회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남=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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