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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만난 버번 칵테일, 와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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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8면

그녀는 발레리나다. 공연이나 연습 후에는 집에 가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슬리퍼를 신고 이곳으로 향한다. 혼술을 할 요량이다. 한 주 내내 출근 도장을 찍은 적이 있을 정도로 이곳을 사랑한다. 별명이 단골리나(단골 발레리나)다.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34> 한남동 옥스 바(Bar)

그는 까다로운 취향의 파일럿이다. 윗등심, 아랫등심을맨눈으로 구분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고기를 에이징(숙성) 해도 만족이라는 걸 모른다. 그런 그가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계속 찾는 곳 또한 이곳이다.

이곳은 한남오거리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옥스 바(OX Bar)’. 옥스는 황소라는 뜻으로 ‘소 바’로 불린다. 올해 초 오픈 한 ‘신참’이지만 이미 입소문을 탔다.

지하로 들어서면 재즈 보컬리스트 그레고리 포터의 음악이 나직하게 흐른다. 바 가운데에는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있다. 몇 개의 테이블과 함께 황소 그림도 보인다. 한쪽으로 조그마한 창이 있는데, 숙성 중인 한우를 볼 수 있다. 가공실과 숙성실이다. 그렇다. 이 바의 메인 컨셉트는 소와 과일이다. 스테이크를 비롯한 각종 쇠고기 요리, 과일 칵테일과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는 다이닝 바다.

주인은 누구일까. 바텐더에게 물어보니 “편한 옷 차림으로 바 곳곳을 왔다 갔다 하는 저분이 사장님이에요”란다. 임재정 대표를 붙잡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는 좋은 커피 집만 찾아다니고, 하루에 바를 5~6곳이나 다닐 정도로 커피와 위스키를 사랑했다. 회사 생활에 싫증이 나자 사표를 내고 내자동에 5평짜리 작은 바를 차렸다. 카페 겸 위스키 바인 ‘돈 패닉(Don’t Panic)’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덕분에 위층에 ‘빅블루’ 라는 바도 열었다.

이어 클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한 뒤 두 명의 동업자와 함께 오픈한 곳이 옥스 바다. 증권가의 황소를 은근히 연상시킨다. 증권 시장에서는 상승장을 불(Bull·황소)마켓, 하락장을 베어(Bear·곰) 마켓이라고 한다. 바의 기운을 황소가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을 터다.

“편하게 오셔서 저렴한 가격으로 한잔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입니다. 손님을 많이 받기보다 좋은 손님, 단골 손님에 집중하고 있고, 함께 위스키 워크숍을 계획하는 등 친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손님들에게 다소 까칠한 사장님으로 보인다고도 하시는데, 진상 손님이 많아지면 바텐더들이 그만두기 때문에 제 역할이 중요합니다.”

소는 충북 음성군 농협 축산물 공판장에서 들여온다. 예전엔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다 썼는데, 지금은 채끝·등심·부챗살·업진살·앞사태 등을 가져다 쓴다. 드라이(Dry aging) 에이징과 웻 에이징(Wet aging)을 거쳐 한 달 뒤 쫄깃한 육질을 완성한다. 시그니처 메뉴는 티본 스테이크(T-bone steak)와 포터 하우스(Porter House). “대부분 미국 소를 파는데 저희는 한우를 티본으로 판매합니다. 100g당 1만4000원으로 다른 스테이크 전문점에 비해 저렴하죠.”

그 외 로스트비프, 특수 부위 플래터(부위별 모듬), 송아지 정강이 고기를 활용한 오소부코(Ossobuco)도 있다. 100g, 200g 단위로 주문 가능한 드라이드(Dried) 스테이크는 술과 함께 가볍게 고기를 즐기려는 분들에게 적합하다. 매주 월요일에는 브리오슈 번과 소고기 패티가 두툼하게 들어간 햄버거도 맛볼 수 있다.

바는 이수원 매니저가 지휘하고 있다. 광화문 텐더 바 출신으로 일본의 전설적 바텐더 우에다 카즈오로부터 하드 셰이킹을 전수받았다. 팀을 이루고 있는 최범규 바텐더와 함께 여심을 저격하는, 술 맛나는 칵테일들을 내놓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생과일 칵테일. 식전에는 입맛을 돋우고 식후에는 입을 개운하게 해준다. 제철 과일을 쓰는데 요즘은 수박, 자두, 복숭아가 인기다. 제목도 재치있다. 가장 인기있는 수박 칵테일은 ‘수박이박수’. 수박에 진을 섞고 착즙 자몽 주스로 산도를 조절했다. ‘피치못할’이란 이름의 복숭아 칵테일은 진 베이스로 복숭아·자몽·레몬즙·살구 리큐르 등을 넣는다. 자두 칵테일은 인스타그램 공모를 통해 가수 지드래곤을 연상하게 하는 ‘자두레곤’이라고 부른다.

맛이 궁금했다. 스테이크와 버번 위스키는 정평이 나있는 조합. 두 훈남 바텐더에게 네 가지 버번 위스키로 칵테일 코스를 맛보게 해달라고 했다. 우선 밸런스가 좋은 버번 버팔로 트레이스(Buffalo trace)를 활용한 식전 칵테일은 위스키 쿨러. 적당한 산미와 청량한 맛이 식욕을 당기게 하고, 더위를 식혀준다. 다음은 귀리·보리·호밀·밀로 만들어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인 코발 포 그레인(Koval Four Grain). 감칠맛을 내는 이 버번을 활용한 칵테일 블랙 맨하탄을 스테이크와 함께 맛보았다. 묵직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기름진 고기의 맛을 코팅해 싹 잡아주는 느낌이다.

호밀로 만든 리뎀션(Redemption)은 새콤달콤한 맛과 함께 좋은 밸런스를 지닌 팔방미인. 제철 과일의 향미를 잘 살려주는 칵테일 올드패션드는 입 안을 상큼하게 정리해준다. 마지막은 63도의 복잡한 향미를 지닌 부커스(Booker’s)를 활용한 하이볼. 지긋한 맛이 강한 킥(Kick)을 날리며 다시 술 달릴 준비를 하게 해주었다.

신나게 마시다 보니 옆에 다른 바에서 온 바텐더가 앉아있다. 알고 보니 옥스에서는 바텐더들에겐 칵테일을 잔당 만원에 판매한다고. 바텐더라는 일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힘내라는 정책이란다. 반갑게 인사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졌다. 결국 취한 김에 의기투합해 버번을 통째 주문해서 마셔버리는 기염을! 맙소사. 이게 상승장을 지키는 황소의 위력인가보다. ●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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