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요구 무시 못해 따른 점 인정하면서도 뇌물죄로 본 건 논란 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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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03면

“1라운드는 사실상 끝났다.”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핵심 쟁점은 #1심 유죄 근거 다툴 여지 있어 #항소심 결과 섣불리 예측 못해 #‘묵시적 청탁’ 인정 여부가 쟁점 #재산 국외 도피 규정은 위헌 소지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지난 25일. 국정 농단 사건 관련 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법원에서 뇌물 공여 혐의를 유죄로 본 만큼 비록 재판부는 다르지만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에 대한 판단도 1심 단계에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섣불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1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근거들이 사안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항소심에선 어떤 부분들이 핵심 쟁점이 될까.

법조계 안팎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묵시적 청탁’의 인정 여부다. 1심 재판부는 삼성의 승마 지원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봤다. 즉 삼성 측이 명시적으로 청탁은 안 했지만 묵시적으로 승계 작업에 관해 청탁했고 그 대가로 지원이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명확한 청탁이 없는 상황에서 정황증거만으로 뇌물을 주고받았다 보기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 출신의 한 로스쿨 교수는 “구체적 청탁은 없었는데 일종의 선문답을 통해 양측이 원하는 바를 이뤘다고 뇌물죄로 보는 것은 작위적이다. 항소심에서도 다시 논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극적 뇌물 제공’ 판단도 항소심에서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유리한 양형 요소로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거론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의 요구를 무시 못해 따른 점을 인정하면서도 뇌물 공여라 본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부분에 대해 뇌물이 아니라고 본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재판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해준 액수에 삼성 측이 수동적으로 기금을 낸 것으로 보인다며 대가성이 없다고 봤다.

일각에선 재산 국외 도피 혐의 적용을 두고 해당 법 조항에 대한 위헌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형 로펌 중견 변호사는 “국외 재산 도피 범죄는 법정형이 지나치게 높다. 도피액이 5억~50억원 미만일 때 5년 이상, 50억원 이상일 땐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같은 뇌물범죄를 저질렀어도 어디로 돈을 보냈느냐에 따라 양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다른 형사범죄와 균형이 맞지 않게 과도하게 처벌해 위헌 소지가 있다. 만약 이 혐의가 적용되지 않았다면 재판부가 실형과 집행유예 여부를 두고 지금보다는 더 고민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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