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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타고 성주 사드 찾은 미군 별 16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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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라이팅에디터 겸외교안보선임기자

김수정 라이팅에디터 겸외교안보선임기자

‘일촉즉발 8월의 한반도’라는 드라마가 클라이맥스를 넘어선 것일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이에 맞선 북한의 ‘괌 포위 사격’ 위협 등으로 팽창해 온 충돌에너지가 약해지는 분위기다.

해리스 “사드는 미국도 한국도 아닌 한·미 동맹이 결정했다” #‘코리아 패싱’ 안 되려면 지지층 의식한 안보 모호성 벗어야

지난 21일 시작된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참가 미군의 규모가 지난해보다 7500명 줄었다. 미국은 “북한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이 훈련의 폐지·축소를 요구해 온 중국과 북한에 명분을 준 조치란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 15일 “미국을 더 지켜보겠다”고 한 뒤 ‘중단 모드’다.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22일 “긍정적인 뭔가가 일어날 수 있다” “북한이 자제를 보여준 데 만족한다”고 각각 논평한 가운데 북·미 간 뉴욕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일어난 일들이다.

22일 주한미군 오산기지에서 열린 미군 수뇌부 5인의 합동 기자회견은 군사적 응징과 외교적 해결의 변곡점과 복잡성을 상징하는 이벤트였다. 장거리 전략폭격기 등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를 담당하는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공군 대장)을 비롯해 해리 해리스 태평양 사령관(해군 대장),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장(공군 중장), 션 게이니 제94방공미사일사령관(육군 준장),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육군 대장) 등은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육군 대장)과 함께 한반도 유사시를 책임지는 사령관들이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이들이 한국 땅에 모인 것도, 기자회견을 한 것도 처음이다. 외신들은 “워싱턴에서도 별 16개가 모이는 건 전시 브리핑 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이례적 장면”이라고 했다. 위성락 서울대 겸임교수는 “UFG 연습 규모의 축소를 오판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북·미 간 대치가 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시점에 늘 나오는 건 미·중 강대국 논리와 편의대로 한반도 이슈가 흘러갈 수 있다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다.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도 그 징조가 보였다. 한국이 ‘운전대론’을 강조한다고, 남북 대화만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미국과의 굳건한 신뢰를 통해 옆자리에서 함께 가는 게 관건이다.

당초 기자회견을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기지에서 하려던 미군 수뇌부는 “시위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만류로 취소했다고 한다. 대신 헬기로 사드 기지를 찾았다. 진입로가 시위대에 봉쇄된 현장을 상공에서 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리스 사령관은 기지 방문 전날 국회 인사들을 만나 “사드는 미 정부가 결정한 것도, 한국 정부가 결정한 것도 아니다. 한·미 동맹이 결정한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8월은 살벌했다. 김정은과 트럼프라는 조합이 만들어낸 ‘공포’라고들 한다. 하지만 북한의 ICBM 완성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트럼프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덜 노골적이고 덜 거칠었을지 모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이후 “미국은 한국 동의 없이 전쟁을 할 수 없다” “제한적 전쟁이라도 한국민뿐 아니라 미국민·주한미군도 다친다”고 했다. 누가 도발자인가. 북한의 핵미사일 체계 완성이 남의 일인가. 북한 위협에 대한 상황 인식을 미국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 코리아 패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부품까지 반입한 사드 발사대 4기를 배치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 외교안보 자문그룹의 한 인사는 “대선 때의 지지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 안팎 고공행진이다. 이런 성원은 국익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준 힘이다. 사드 문제에 대한 모호성을 조속히 탈피하라. 오디언스(청중)는 국내 지지층뿐 아니라 미국과 국제사회에도 운집해 있다.

김수정 라이팅에디터 겸 외교안보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