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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서 한 5년 징역살이 처벌로 인정될까…대법원 판단은

중앙일보

입력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현지 사법기관에 의해 구금돼 있었다면 국내 재판에서 그 기간을 선고 형량에 포함해야 할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에 대해 새로운 판례를 내놨다.

필리핀 가이드, 살인 혐의 5년 구속 #무죄받고 풀려나 국내서 '징역 10년' #미결구금기간 형량 산입 여부 쟁점 #대법원 전원합의체, "미결은 제외"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는 2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모(40)씨의 상고심에서 "해외 미결 구금일수는 선고 형량에 포함하지 않는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날 쟁점은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형이 집행된 경우 국내 재판에서 반드시 구금일수 만큼 형량을 줄이도록 한 형법 7조를 미결 구금일수에 적용할 수 있느냐였다.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해외 미결 구금기간 국내 형량 포함여부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관들이 법대에 앉아 있다. 임현동 기자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해외 미결 구금기간 국내 형량 포함여부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관들이 법대에 앉아 있다. 임현동 기자

형법 7조는 원래 ‘범죄에 의하여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집행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외국 복역 기간의 산입 여부를 재판부 재량에 맡긴 셈이다.
그러나 2015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신체 자유의 제한을 최소화하라는 취지였다. 지난해 12월 외국에서 집행된 복역 기간을 국내 선고 형량에 산입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형이 확정되기 전 미결 구금기간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업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개정 법률의 적용 범위에 대한 첫 판례다.

전씨는 2005년 10월 필리핀 세부에서 함께 살던 고향 후배 지모(당시 29세)씨와 말다툼을 하다 흉기를 휘둘러 지씨를 살해한 혐의로 현지 사법당국에 의해 구속기소 됐다. 국내에서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전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관광 가이드로 정착한 지씨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서 가이드로 일하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필리핀 법원은 2010년 10월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지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전씨는 5년 1개월 만에 석방됐고, 2016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 미결 구금기간 국내 형량 산입 안돼" 

검찰은 전씨를 공항에서 붙잡아 살인 혐의로 국내 법정에 세웠다. 1심 법원은 전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살인죄의 양형 기준으로 보면 권고형량(징역 10~15년)의 최소치였다. 법원은 그가 필리핀에서 재판 받는 동안 5년간 구금돼 있던 점을 고려했다.

전씨는 항소했다. 필리핀에서 구금됐던 5년 1개월을 형기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개정된 형법 7조가 자신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면 1심 법원이 선고한 징역 10년 중 필리핀에서 구금돼있던 기간을 빼고 4년9개월이 선고돼야 한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정선재)는 “형법 7조는 외국에서 ‘형’이 ‘집행’된 경우에 적용되고 외국에서 ‘미결구금’된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전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임기 중 마지막이 될 주문 낭독을 준비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임기 중 마지막이 될 주문 낭독을 준비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법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은 외국에서 범한 죄에 대해 외국에서 처벌을 받은 다음, 국내에서 다시 처벌을 받게 될 때 피고인의 불이익을 완화하기 위해 마련된 규정으로, 외국 법원의 판결이 집행된 사항에 대해서만 적용된다고 해석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외국에서 미결구금됐다는 사실은 최종 선고에서 감경의 사유로 참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대법관 13명 중 5명(고영한․김창석․조희대․김재형․조재연 대법관)은 “미결구금과 형의 집행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어 달리 취급해서는 안된다”며 “해외의 미결구금기간을 산입하는 것이 적법절차의 원칙을 선언한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앞으로 비슷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이 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로 재판 중이거나 형이 확정돼 외국 수형기관에 수감돼있는 우리 국민은 1330명(6월 30일 기준)이다.

이날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 중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있다. 양 대법원장은 다음달 24일 퇴임을 앞두고 있는데 대법원은 통상 연간 10건 안팎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한다.

▶해외 수감 중인 한국인 현황
(2017년 6월 30일 기준. 단위: 명)

살인

강·절도

성범죄

납치감금·폭행

사기·도박

마약·밀수

출입국·불법체류

교통사고

기타

합계

178

194

55

108

177

366

46

18

188

1330

[자료=외교부]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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