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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후각1만배, 청각 40배 이상 발달한 인명구조견 …실종자 수색에 반드시 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일 오후 5시쯤 부산 금정구 이모(57)씨는 아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고 귀가하지 않았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연락했고, 이씨 아내는 관할 부산 금정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인명구조견 운용하는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대 가보니 #구조견 바람·세종·천둥, 2년간 혹독한 훈련받고 '자대 배치' #부산 인근서 연간 80여회 수색…최근 치매환자·자살자 늘며 출동 늘어 #우수한 어린 개 선발해 엄격한 훈련 …30~40%만 구조견 돼 #운용자에 무조건 복종해야…먹이는 전용사료에 가끔 보상식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이씨 종적은 오리무중이었다. 경찰은 이씨 가족에게서 “기장군 정관면에 있는 백운 추모공원의 모친 묘지에 갔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공원 인근의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했다. CCTV 영상에서 백운공원 인근 도로를 지나는 이씨를 실종신고 나흘만인 11일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119 종합상황실에 합동수색을 요청했다. 신고를 받은 부산소방안전본부는 11일 오전 8시 33분 인명 구조견 ‘바람’과 구조대를 백운공원 일대에 투입했다. 20여분쯤 뒤 백운공원 제1 묘지 맞은편 야산 약 300m 지점에서 바람이 ‘컹컹’ 우렁차게 짖었다. 바람의 핸들러(구조견 운용자) 김용덕(45) 소방위는 바람이 실종자를 발견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김 소방위 등은 소주와 수면제를 먹고 쓰러져 있던 이씨를 발견했다. 이씨는 옷이 찢어지고 온몸에 찰과상을 입은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나흘간 산속을 헤맸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도 없었다.

핸들러 김용덕 소방위와 구조견 바람. 바람은 최근 실종자 구조에 성공했다. 황선윤 기자

핸들러 김용덕 소방위와 구조견 바람. 바람은 최근 실종자 구조에 성공했다. 황선윤 기자

응급조치를 받은 이씨는 “내가 죽으려 했는데 죽지도 못하고 구조대원에게 피해만 줬다”며 미안해했다. 병원에 옮겨진 이씨는 그 뒤 건강을 회복했다.

구조견은 붕괴 더미나 수목 등에 가려서 많은 인력과 첨단장비를 동원해도 찾기 어려운 재난현장에서 실종자를 신속하게 확인해 핸들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실종자를 찾아낸 바람은 독일산 셰퍼드 수컷으로 다섯 살이다. 바람은 빠른 스피드로 산악수색에서 능력을 발휘하면서 지난 5월 국제조직인 국제인명구조견협회(IRO)의 수색능력평가에서 최고등급에 합격했다. IRO는 매년 국가별로 인명 구조견을 평가해 등급(1·2·3등급)을 매긴다. 1급이 최우수 등급이다. 국내에도 한국인명구조견협회(KKCR)가 있어 해마다 우수구조견 선발대회 등을 연다.

핸들러 서태호 소방교와 구조견 천둥. 천둥은 뛰어난 후각을 자랑한다. 황선윤 기자

핸들러 서태호 소방교와 구조견 천둥. 천둥은 뛰어난 후각을 자랑한다. 황선윤 기자

바람은 어떤 훈련을 거쳐 1등급이 됐을까. 2012년 6월 태어난 바람은 중앙 119 인명 구조견 센터에서 20개월의 기초훈련을 받았다. 이후 3세가 된 2015년 12월 부산소방안전본부 특구구조대 구조견 팀에 배치됐다. 군인으로 치면 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것과 같다. 119인명 구조견 센터에서는 유전인자가 우수한 어린 개를 선발해 사회적응·종합전술·산악수색·붕괴지 수색 같은 고도의 훈련을 거쳐 합격한 30~40% 정도만 ‘자대’에 배치한다.

지난 11일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추모공원 일대에서 구조견이 찾은 실종자를 부산소방안전본부 관계자들이 병원에 후송하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안전본부]

지난 11일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추모공원 일대에서 구조견이 찾은 실종자를 부산소방안전본부 관계자들이 병원에 후송하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안전본부]

바람의 동료는 세종(4세·마리노이즈·수컷)과 천둥(8세·골든리트리버·수컷). 세종은 지진 등 건물붕괴 현장의 수색에서, 천둥은 뛰어난 후각능력으로 다양한 재난현상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바람이 가장 우수한 편이다. 천둥은 이미 은퇴한  전국 1호 구조견인 ‘세중’에 이은 전국 2호 구조견이다. 만 8세 이후 은퇴 규정에 따라 올 연말 은퇴할 예정이다. 은퇴 후에는 일반인에게 분양돼 제 2의 삶을 산다.

국가 공인 인명구조견 인증서. 황선윤 기자

국가 공인 인명구조견 인증서. 황선윤 기자

바람·천둥·세종은 매일 오전 9시쯤 부터 특수구조대 훈련장에서 오전 훈련을 받는다. 재난·산악에서 필요한 수색훈련, 핸들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복종훈련, 높은 언덕과 가시덤풀 등을 헤쳐가는 장애물 훈련 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핸들러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복종훈련이다. 복종훈련은 반복적인 보상(먹이)과 좋아하는 놀이(공 같은 장난감)를 통해 이뤄진다. 끊임없는 훈련과정에서 잘할 때마다 먹이를 주고 공놀이 등을 수시로 하며 핸들러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대에 있는 인명구조견 설명서. 황선윤 기자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대에 있는 인명구조견 설명서. 황선윤 기자

지난 16일 기자가 부산 해운대구 좌동 특수구조대 훈련장을 찾았을 때 김용덕 소방위 등이 시범을 보여줬다. 김 소방위가 몰래 높다란 철제 구조물에 올라가자 바람이 순식간에 철제구조물 아래로 달려가 컹컹 짖어댔다. 또 김 소방위가 최대한 멀리 작은 볼(공)을 던지자 바람은 쏜살같이 달려가 공을 물어왔다. ‘달려가·물어 와’ 같은 김 소방위의 명령을 모두 알아들었다.

그때 마다 김 소방위는 사료 1~2개를 입에 넣어줬다. 김 소방위는 “그렇다고 사료를 하루 500g이상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덩치에 비해 적다 싶을 정도로 조금씩 수시로 준다는 것이다. 사료는 사료회사에서 구조견의 품종 특성에 맞게 제조한 전용 사료다. 힘든 구조활동에 성공하면 그때서야 소·오리·닭고기 등으로 만든 영양캔을 주곤한다. 이 영양캔은 1개 6000원 할 정도로 비싸다. 전용사료를 주는 것은 구조견이 김치·김밥 같은 여러 음식에 길들여 지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냄새를 맡고 구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갈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덕 소방위는 “인명 구조견이 복종하지 않고 딴짓을 하면 구조견으로서 자격이 없고 구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구조견의 생명은 복종이다”고 말했다.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대는구조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구조견을 기리는 비석을 구조대 훈련장 한켠에 설치해놓았다.황선윤 기자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대는구조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구조견을 기리는 비석을 구조대 훈련장 한켠에 설치해놓았다.황선윤 기자

오전 훈련에 이어 오후에는 각기 지정된 핸들러 3명과 수시로 개별 훈련을 한다. 구조견 입장에서 보면 핸들러의 목소리와 몸짓 등 일거수 일투족을 익히고 핸들러와의 교감을 확대하는 과정이다. 김갑용(54) 특수구조대장은 “구조견은 다른 사람 말을 안듣고 주인만 따를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며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평소 핸들러와 구조견은 한몸 한뜻이 돼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핸들러와 구조견은 이런 훈련 외에 연간 120시간 별도 교육도 받는다. 핸들러는 이 교육을 받은 뒤 개인시험은 물론 구조견과 공동시험에서 합격해야 핸들러 자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김용덕 소방위를 비롯해 세종의 핸들러 양준석(34),천둥의 핸들러 서태호(36) 소방교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들 3명은 모두 동물을, 그중에서 개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전국에는 소방청 산하 8개 시·도 본부에 26명의 핸들러와 구조견이 배치돼 있다.

인명구조견이 일상 생활을 하는방의 모습. 황선윤 기자

인명구조견이 일상 생활을 하는방의 모습. 황선윤 기자

구조견은 사람보다 후각은 1만배, 청각은 40배 이상 뛰어나다. 시력은 좋지 않지만 움직이는 물체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구조견이 핸들러의 음성 명령과 몸짓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이유다. 실제 재난현장에서는 공기 중에 떠도는 인간 공통의 냄새로 재난자를 찾아낸다. 이 냄새를 찾아낼 수 있게 핸들러는 바람의 방향을 잘 체크해 맞바람이 부는 쪽에서부터 수색을 시작한다. 서태호 핸들러는 “구조견의 지능이 다른 개보다 특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특수상황에 맞게 훈련돼 핸들러의 거의 모든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고 인간 특유의 냄새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덕분에 바람·천둥·세종 등은 2004년 이후 부산·울산 일대에서 지금까지 590여회 크고 작은 재난·사고현장에 출동해 43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 사체 28구도 찾아냈다. 전국 최고수준의 수색 능력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부산소방안전본부는 2011년부터 올해까지 5번이나 인명 구조견 전국 최우수기관에 선정됐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3년 연속 최우수기관에 선정됐다. 최근 구조견팀은 연간 80여회 출동 실적을 보이고 있다. 예전의 수십회에서 크게 늘었다. 요즘은 치매환자나 자살 기도자의 수색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핸들러들은 귀띔했다.

재난 현장에 출동할 때 사용되는 구조견 우리(케이지). 여름철에도 뜨거워지지 않는 특수재질로 만들었다.황선윤 기자

재난 현장에 출동할 때 사용되는 구조견 우리(케이지). 여름철에도 뜨거워지지 않는 특수재질로 만들었다.황선윤 기자

부산 특수구조대 훈련장 한켠에는 구조견 ‘날쌘’과 ‘바람’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독일산 셰퍼드 수컷인 날쌘은 2000년 8월 태어나 2013년 8월까지 131회, 독일산 셰퍼드 암컷인 바람은 2003년 12월 태어나 2017년 4월까지 124회 재난현장에서 고귀한 생명을 구하다 생을 마감했다. 구조대 측이 8년간의 구조견 역할이 끝난 뒤 이들을 일반인에게 분양했다가 생을 마감하자 유골을 가져와 비석을 세운 것이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구조견이 운영된 것은 2010년 5월 중앙119 인명 구조견센터가 운영되면서다. 이전에는 삼성그룹이 90년대말부터 인명 구조견센터를 운영해 훈련된 구조견을 시·도소방본부에 무상기증하면서 시·도별로 운영됐다. 부산에서는 2004년 구조견이 첫 배치됐다. 김갑용 특수구조대장은 “생존자를 찾아 가족에게 인계하고 가족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며 “싱가포르 같은 나라처럼 우리도 시너·휘발유 등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화재조사견을 운영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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