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라면 만섭처럼 유턴할 수 있을지 내내 고민했다"

중앙일보

입력

15일 누적관객 900만명을 넘어선 영화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2년 전 받고 연출을 맡을지 일주일동안 고민했다고 했다. [중앙포토]

15일 누적관객 900만명을 넘어선 영화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2년 전 받고 연출을 맡을지 일주일동안 고민했다고 했다. [중앙포토]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ㆍ18)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15일 관객 57만명을 모으며 900만명을 돌파했다. 2일 개봉 후 평일에도 하루 50만~60만명씩 들었던 점을 감안하면 1000만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볼 수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13일 관람 이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택시운전사’의 장훈(42) 감독은 역사를 꾸준히 다뤘다. 2010년엔 남북문제로 ‘의형제’를, 2011년엔 한국전쟁으로 ‘고지전’을 만들었다. 다음 작품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에 관한 ‘궁리’다.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2년 전 받고 연출을 망설였던 그는 “촬영하면서 세 번 울었고 양심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장훈 감독과의 일문일답.

1000만 관객 초읽기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이방인의 시선으로 광주 보여주고자 의도적 해석 피해" #'의형제' '고지전'에 이어 역사 소재 영화로 관객 공감

-연출을 제안 받고 수락하기까지 일주일간 망설였다 들었다.
“겪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광주의 비극을 다룬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엄유나 작가가 쓴 시나리오의 ‘인물’들이 마음에 남았다. 광주 시민이나 계엄군의 시선으로 5ㆍ18을 다룬 소설ㆍ영화들은 기존에 있었다. 그런데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나 서울의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은 제3자다. 같은 제3자 입장에서 공감 가는 바가 많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피터를 태우고 광주에 가서 충격 받는 만섭이 꼭 나 자신 같이 느껴졌다.”

-‘택시운전사’의 토대가 된 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회고다.
“그가 한국에 와서 광주를 취재한 게 1980년 5월 20일이다. 22일 독일 매체를 통해 5ㆍ18을 세계 최초로 보도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그는 23일 다시 광주로 가서 27일까지 취재했다. 외신도 그의 최초 보도를 다뤘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몰랐다. 힌츠페터의 공로를 조명한 것도 한참이 흐른 2003년이 돼서다.”

-생전 힌츠페터를 독일에서 직접 만났는데.
“어떻게 그 위험한 현장을 취재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기자니까 가야지’ 하시더라. 투철한 사명감이나 한국과의 인연을 말할 줄 알았는데, 기운이 좀 빠졌다. 그런데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너무나 와 닿더라. 만섭이 광주에 간 것도 돈(택시비) 때문이고, 혼자서 도망치려다 다시 광주로 돌아간 건 돈을 받아 놓고 손님(피터)을 그곳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일조차 힘든 시대가 있었던 거다.”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사진 정경애(STUDIO 706)]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사진 정경애(STUDIO 706)]

-연출 톤은 어떻게 잡았나.
“두 이방인의 시선에 비친 광주와 그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의도적인 해석은 일부러 피했다. 만섭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관객 각자가 ‘나라면 어땠을까’ 느끼고 판단하기를 바랐다. "

-영화 말미 금남로 유혈 진압 장면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정말 찍고 싶었던 건, 비로소 그 광경을 직시하는 만섭의 표정이다. 총을 맞고 쓰러진 광주 시민들이 구출되고, 계엄군이 두 번째로 총구를 든다. 그걸 본 만섭은 광주 사람들을 향해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민주화운동 따위 관심 없고 어린 딸이 기다리는 서울로 도망갈 궁리만 하던 인물이 스스로의 의지로 광주로 돌아와 그날의 현장을 끝까지 목격하는 것이다. 바로 그 표정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다.”

-촬영 중 세 번 울었다고.
“만섭이 광주로 유턴할 때, 금남로에 쓰러진 사람들을 보고 눈물 흘릴 때, 피터를 택시에 태우고 광주를 빠져나오려다 잠시 발길을 떼지 못할 때. 기술시사 때도 송(강호) 선배 연기 보고 울었다. 내 영화 보고 운 건 처음이다.”

평범한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사진 오른쪽)은 독일 기자 피터(왼쪽)로 인해 광주의 진실을 목도한다. [사진 쇼박스]

평범한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사진 오른쪽)은 독일 기자 피터(왼쪽)로 인해 광주의 진실을 목도한다. [사진 쇼박스]

-왜 송강호였나.
“만섭 역에 송강호 말고 떠오르는 배우가 없지 않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랬다. 만섭은 소시민인데, 디테일한 감정이 요구되는 어려운 역할이다. 송강호는 항상 그 이상의 다른 해답을 보여 준다.”

-후반부는 상당 부분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에 의존한다. 배우의 연기력에 기댄다는 인상도 있었다.
“여러 편집본을 시도했고, 송 선배의 연기만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지금처럼 결정했다. ‘택시운전사’는 결국 만섭의 감정을 쫓아가는 영화니까. 그의 클로즈업으로 설득이 안 됐다면 기존 요소를 더 넣었을 것이다.”

-광주 택시 운전사들이 만섭의 탈출을 돕는 카체이싱 장면은 다소 인위적으로 다가왔다.

“전체 영화 톤과 달라 제일 고민했던 장면이다. 원래 시나리오 초고에선 광주 택시 수십 대가 나타나는 설정이었다. 실제 5ㆍ18 때 광주 택시 운전사들은 목숨 걸고 앞장서 부상자를 나르고 시위를 도왔다. 그들의 희생을 표현하기 위한 허구의 장면이었다. 만섭과 피터를 아는 몇몇이 와서 돕는 느낌. 차체가 부딪치는 액션보다 운전대를 잡은 인물들을 찍으려 했다. 평생 가는 마음의 빚이 느껴지는, 스펙터클보다 사람이 느껴지는 장면이길 바랐다."

 -영화가 개봉하는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후반작업 때문에 직접 가진 못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광화문 집회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며 수많은 만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나라면 만섭처럼 유턴할 수 있었을까 많이 고민했다. ”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