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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죽은 박지원…重刑 부담·수감생활 피로 탓인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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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현대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관계자가 24일 전한 박지원(朴智元.사진)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요즘 모습이다.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지난 6월 송두환(宋斗煥)특검팀에 의해 구속(직권남용 등) 수감될 때만 해도 꽤 여유를 보였던 그다. 조지훈의 시 '낙화(落花)'를 인용해 "꽃잎이 진다고 해서 바람을 탓하랴. 다만 한 잎 차에 띄워 마시며 살겠다"고 소감을 말해 화제도 만들었다.

지난 18일까지 네 번의 재판에서도 내내 당당한 모습을 유지했다. 진술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도 역설했다.

그의 변화는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 수수 혐의로 대검에 처음 소환된 지난 19일 감지됐다. 대북 송금 결심 공판에서 징역 5년을 구형받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잠깐 사진 촬영에 응했을 뿐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안했다.

수사 관계자는 "혐의를 부인하는 건 여전하지만 소환이 거듭될수록 점점 피곤해하고 있다. 힘 없는 목소리로 '그런 적 없습니다'고 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朴씨의 변화는 송금 사건의 다른 피고인들(징역 1~3년)보다 훨씬 센 구형량으로 심적 부담이 커진 때문으로 보인다. 거기에 1백50억원 수수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중형이 불가피해진다.

朴씨가 2000년 4월 현대 측에서 받았다는 1백50억원은 액수로는 권노갑(權魯甲)전 민주당 고문(2백억원)보다 적다. 하지만 朴씨가 당시 공무원 신분(문화관광부 장관)이어서 5천만원 이상을 받으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되는 수뢰죄가 적용돼 처벌 강도는 더 크다. 權씨에게 적용된 알선수재 혐의의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다.

전 정권에서 가장 잘나가던 朴씨가 느닷없는 두달 이상의 감옥 생활에 지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朴씨의 한 측근은 "최근 열대야로 인한 고통을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했다"고 전했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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