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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저평가 비트코인으로 수익"…디지털 시대 신종 다단계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건 다단계가 아닙니다. 비트코인 다단계와는 차원이 달라요."

지난 8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돈을 벌 수 있다는 S사의 사업설명회가 한창이었다. S사 소속 강사는 “카드를 쓰고 영수증을 모아 제출하면 사용액의 20%를 돌려준다”는 사업 모델을 설명했다.

가입비 16만원, 월 회비 15만원을 내고 회원 자격을 얻으면 월 150만원 한도로 캐시백 20%를 해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회사는 회원들이 제출한 영수증으로 ‘빅데이터 사업’을 해 수익을 낸다고 했다. 설명회를 듣던 중장년층 30여 명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사는 "2명에게 소개하면 가입 회비가 면제되고 하루에 5달러씩 받을 수 있다"고 돈 버는 방법을 설명했다. 자신도 매일 35만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회원은 1700명이 넘는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설명회가 끝난 뒤 50대 남성 A씨는 “빅데이터가 주목받는다고 해서 와봤는데, 불법 다단계는 아니라고 하니 가입해 볼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가입했다는 60대 여성 B씨는 "네이버, 구글이 성공한 것처럼 우리도 사람이 많아지면 금방 수익이 날 것"이라며 누구를 데려올지 일행과 의논하기도 했다.

S사는 카드 사용금액의 20%를 캐시백 해준다고 홍보하며 회원을 모집한다. 미국 본사에서 회원들의 소비패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낸다고 주장한다. [사진 S사 온라인 홍보물 캡처]

S사는 카드 사용금액의 20%를 캐시백 해준다고 홍보하며 회원을 모집한다. 미국 본사에서 회원들의 소비패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낸다고 주장한다. [사진 S사 온라인 홍보물 캡처]

문제는 성황리에 설명회를 한 S사가 지난해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꾸준히 피해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낸다" "어차피 매달 쓰는 카드인데 손해볼 것 없다"는 말을 믿고 가입하는 중장년층이 적지 않다. 하지만, 관련 당국은 빅데이터 사업의 실체가 불분명하고, 약속한 지원금을 신규 회원이 낸 가입비로 충당하는 등 불법 다단계의 요소가 많다고 보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해 S사 사업자 3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유사수신 행위와 사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에 S사의 웹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국의 행정적인 조치와 사법적인 판단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설명회는 계속되고 있다.

S사는 국내에 3만 7000명, 전 세계 280만 명의 회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입비와 월 회비가 다른 다단계 사업에 비해 적어서 피해가 의심되도 관계 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투자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업체 측은 합법적인 다단계 사업이라는 입장이다. 피해 위험성이 잘 알려지지 않다보니 올들어 T사, A사 등 유사 업체도 등장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열풍에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유사 코인을 내세운 다단계 업체가 우후죽숙 생겨났다. [사진 coindesk.com]

가상화폐 '비트코인' 열풍에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유사 코인을 내세운 다단계 업체가 우후죽숙 생겨났다. [사진 coindesk.com]

빅데이터나 비트코인 등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업 모델이 등장하면서 이를 이용한 다단계 의심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트코인 열풍을 이용해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가상화폐를 내세운 업체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피해 사례가 접수된 W사 사건을 수사 기관에 통보했다. W사는 "올 2분기 거래소에 상장되면 가격이 수십배 뛸 것"이라며 다단계 형태로 투자자를 모집해왔다. 청주지검도 이 사업으로 인한 피해 사건을 수사 중이다.

앞서 서울 강남 일대에서 "중국 국영은행이 발행한 전자 화폐"라며 다단계 투자 사기를 벌인 '힉스코인' 제조·판매사의 운영자는 지난해 11월 부산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까지 특수판매공제조합에 가입된 가상화폐 투자업체는 한 곳도 없다. 공제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다단계 업체는 피해 발생 시 보상받을 길이 없다. 가상화폐 불법 다단계 업체의 주요 타깃은 인터넷에 익숙치 않은 노년층이다. 비트코인에 투자해 수익을 본 뒤 저평가된 가상화폐를 찾다가 불법 다단계 업체에 빠지는 청년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홈페이지를 통해 다단계 조직을 이용한 가상화폐 관련 투자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진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홈페이지]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홈페이지를 통해 다단계 조직을 이용한 가상화폐 관련 투자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진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홈페이지]

경찰청은 지난달 12일부터 '가상화폐 투자사기 등 불법행위 특별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주식이나 외환거래에 쓰이는 전문 용어, 앱을 통한 홈트레이딩 방식 등 그럴싸한 눈속임에 속아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박찬우 경찰청 경제범죄 수사계장은 "최근 투자 사기 업체들은 사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적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단계 사업으로 단기간에 사업을 확장하고 고수익을 올린 뒤 사라지는 수법을 쓴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유사수신 피해 접수는 2015년 110건, 지난해 151건 등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지난 6월까지 75건이 접수됐다.

금융 당국은 낯선 방식의 투자를 권유 받으면 일단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신고센터(1332)에서 상담을 받기를 권하고 있다. 금감원 포털시스템에서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조회할 수 있고 '지인 유치 수당'을 내세운 업체라면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등록된 다단계 업체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현·여성국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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