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철 치안감 "이철성 청장이 '민주화 성지' 삭제 지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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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촛불집회 정국 때 호남을 '민주화의 성지'로 표현한 광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글을 문제 삼아 강인철 당시 광주경찰청장을 문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철성 경찰청장. 박종근 기자

지난해 촛불집회 정국 때 호남을 '민주화의 성지'로 표현한 광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글을 문제 삼아 강인철 당시 광주경찰청장을 문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철성 경찰청장. 박종근 기자

이철성(59) 경찰청장이 지난해 국정 농단 사건 촛불집회 당시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표현한 광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글을 문제 삼아 광주경찰청장을 문책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경찰 지도부 간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6일 경찰 관계자들 말을 종합해 보면 지난해 11월18일 광주지방경찰청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광주시민의 안전, 광주경찰이 지켜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광주 시내에서 촛불집회가 예상돼 교통 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광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캡처]

[광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캡처]

글에서 문제가 된 표현은 '연일 계속되는 촛불집회에서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주신 민주화의 성지~~!!. 광주 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였다. 이 게시물이 페이스북에서 화제를 모으자 이 청장은 참모회의에서 크게 화를 냈고 다음날 강인철 당시 광주경찰청장(현 중앙경찰학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 "당신 말이야, 그 따위로 해놓고"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강 교장은 전화통화에서 "페이스북에 글이 올라가고 다음 날인 11월 19일 오후 3시30분쯤 이 청장이 전화를 했다. 이 청장이 비꼬는 말투로 쏘아붙이는데 그때 난 페이스북에 무슨 글이 올라왔는지도 파악이 안 돼 있는 상태였다. 이 청장이 '글을 바로 내리면 모양새가 이상하니 기술적으로 자연스럽게 처리하라'고 지시해 이날 오후 5시에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글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 당시 '음주운전 사고' 이력이 논란이 됐던 이 청장은 올해 초부터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씨가 민정수석실에 인사 청탁을 한 인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서 열린 공판에서는 이 청장 프로필 서류에 '경찰청장 후보 추천 (OK)'라고 최씨 필체로 적힌 메모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청장은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왔다.

이 청장은 6일 공식 입장을 내고 "당시 강 전 광주청장에게 페이스북 게시글과 관련해 전화하거나 질책한 적이 없다. 다만 11월6일 고(故) 백남기 농민 노제를 앞둔 상황에 강 전 청장이 4일 또는 5일 해외여행 휴가를 신청해 질책한 바는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 교장은 "'이런 상황에 휴가를 가려고 하느냐'는 질책에 '죄송하다. 잘못 판단했다' 말한 뒤 휴가를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달 28일 정기 인사에서 강 교장은 경기남부경찰청 1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주로 초임 치안감이 가는 자리다. 이후 지난 1월에는 중앙경찰학교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6월에는 교비 편법 운용 의혹으로 5주 간 감찰 조사까지 받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이러한 조치들이 페이스북 게시글로 인한 좌천성 인사로 본다. 강 교장은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납득이 안 가는 게 사실이다. 희망지도 안 받고 발령을 내 처음에는 안 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인사였다. 감찰 조사 건은 말이 안 되는 걸 자꾸 들먹이며 나를 공격하는 직원이 있어 내가 먼저 '사실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감찰을) 요청했다"고 알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문책성 인사가 아닌, 통상적인 정기 인사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규모가 크고 관할 경찰서도 많아 지방경찰청장이 차장으로 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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