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덕질’은 길다, 적어도 ‘코믹콘’에서는!
국내 최초 열린 엔터테인먼트 박람회 '코믹콘 서울'
8월 4~6일 사흘간 4만1900명 동원
전 세계 ‘덕후’ 팬들의 축제, 코믹콘 서울(Comic Con Seoul)이 8월 4일(금)부터 6일(일)까지 주말 사흘간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렸다. 만화책·영화·애니메이션·게임·피규어·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분장 및 의상을 직접 재현한 것, 이하 코스플레이) 등을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박람회 코믹콘이 국내에 개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말 개최 발표부터 숱한 화제를 모았던 만큼, 전시장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덕후’ 팬들이 운집했다. 뜨거웠던 현장의 열기를 전한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정경애·강경희(STUDIO 706), 고석희
“와우, 이게 누구야(Wow…. Look Who's Here)?” “오 마이 갓, 미스터 제이(O My God, Mr.J)?!” 각각 조커와 할리퀸으로 분장한 두 남녀 외국인이 일면식도 없는 서로를 요란하게 반긴다. 전시장 반대편에서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2012~2014)의 스파이더맨과 ‘스파이더맨:홈커밍’(7월 5일 개봉, 존 왓츠 감독)의 스파이더맨이 반갑게 포옹한다. 아이언맨, 원더우먼, 슈퍼 마리오 등 다양한 영화·애니메이션·게임 속 캐릭터들로 가득한 이곳. 덕후 팬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화책과 피규어도 즐비하다. 지난 주말 열린 코믹콘 서울의 풍경이다.
국내 처음 열린 이번 코믹콘 서울은 뉴욕·파리·베이징에서 코믹 컨벤션(Comic Convention)’을 개최해온 이벤트 기업 리드팝(ReedPop)과 글로벌 전시 회사 리드 엑시비션스 코리아(Reed Exhibitions Korea)가 공동 주최한 행사다. 코믹콘의 시초이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샌디에이고 코믹콘(San Diego Comic-Con International)과는 주최사가 다르다. 이번 코믹콘 서울에선 만화책·영화·애니메이션·게임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총 113개 업체가 345개 부스로 참여했다. 사흘 동안 관람객 4만190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은 건, 이번 행사의 핵심 게스트인 할리우드 배우 매즈 미켈슨과 스티븐 연. 두 스타가 전시장에 마련된 무대에 번갈아 등장할 때마다, 팬들의 환호성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미켈슨은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점잖은 미소로 객석의 열성적인 환영에 화답했고, 한국계 출신인 스티븐 연은 애써 서툰 한국어와 유창한 영어를 섞어 사용하며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다. 공식 무대 행사 외에, 두 스타는 사흘 연속 전시장에 머물며 스타패스(30만원)를 구매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사인회 및 사진 촬영에 임했다.
전시장 곳곳에 마련된 크고 작은 이벤트 역시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마블 부사장 C B 세블스키와의 대담, 세계적인 코스튬 플레이어 토니 니콜슨의 포토타임, 최고의 코스튬 플레이어를 선정하는 코리아 코스플레이 챔피언십 등 다양한 행사가 사흘 동안 이어졌다. ‘다크타워:희망의 탑’(8월 23일 개봉, 니콜라이 아르셀 감독) ‘발레리안:천 개 행성의 도시’(8월 30일 개봉, 뤽 베송 감독) 등 개봉을 앞둔 영화의 홍보 부스도 반갑게 관람객을 맞았다. 장시간 관람에 지친 일부 관람객은 스낵바에서 판매하는, ‘어벤져스’(2012, 조스 웨던 감독)로 유명해진 아랍 음식 슈와마(Shawarma)로 허기를 달랬다.
코믹콘의 폭넓은 장르만큼, 관람객 역시 무척 다양했다. 친구 및 연인과 함께 온 10~30대 관람객부터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 코믹콘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금세 적응하는 외국인 관람객 등 다양한 연령과 성별, 인종을 가진 관람객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행사장에서 만난 뮤지션 황준하(21)씨는 “행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방문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규모가 커 놀랍다”며 “평소 즐기던 게임 부스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도윤(21)씨 역시 “이미 외국의 대형 코믹콘 행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현장에 와서 코스플레이 등 흥미로운 풍경을 볼 수 있어 무척 즐겁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기대에 비해 즐길 거리가 미흡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본어 강사 김지형(32)씨는 “대부분의 부스가 상품 판매에만 초점을 두었기에,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만한 이벤트가 예상 외로 적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학생 서정은(27)씨는 “소수 관람객을 위한 값비싼 스타패스를 판매하기보다, 좀 더 다양한 행사로 할리우드 스타와 관람객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코믹콘 서울은 으레 ‘덕후 문화’로 치부되는 서브 컬처 장르에 대한 국내 팬들의 뜨거운 애정과 수요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의미가 깊은 행사였다. 김지형씨는 “서브 컬처 문화에 대한 국내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일본 등 해외에 비하면 아직 시장 규모는 작지만, 매년 진행하다 보면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소수의 문화가 아닌, 다양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한데 교감하는 축제의 장. 코믹콘 서울에 참석한 여러 게스트와 관람객의 얼굴에선 희열과 동경, 자부심이 가득 느껴졌다. 앞으로도 이 행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팬들의 바람 속에, 코믹콘 서울은 사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