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231자리 패의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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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2국
[제11보 (231~257)]
白.도전자 曺薰鉉 9단 | 黑.왕위 李昌鎬 9단

'칼을 품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수든 칼을 품듯 강렬한 노림을 간직하며 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형세가 유리할 때는 빠르게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최고일 뿐 노림 따위로 시간을 지체시켜서는 안된다. 수를 내고 싶은 것은 바둑 두는 자의 습관이며 본능이다. 그때문에 유리한데도 관성적으로 노림을 걸다가 역전당하는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다.

이창호9단은 아니었다. 그는 수를 다 보고도 지나쳐갔다. 그는 마치 자신의 실력과 신분을 숨기며 졸장부들의 시비를 피해버리는 무술의 고수와도 같았다.

그런데 오늘 李9단은 너무도 달라진 '인간적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상한 패에 집착해 많은 손해를 봤고 그 바람에 널널하게 이긴 바둑을 피곤하고 긴 승부로 몰고갔다. 그러나 놀랄 일은 아직도 더 남아있었다.

李9단이 231에 따내기 전에 검토실은 '참고도'의 그림을 그려봤다.우선 흑1로 따내는 수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큰 수. 그 다음 남는 곳은 중앙인데 이곳이 쌍방 피해없이 절충된다면 계가는 미세하지만 아직도 흑이 이긴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李9단은 또다시 231의 패를 따냈고(그는 종반전 이후 이 패에 끝없이 집착했다) 순간 232는 曺9단의 손으로 돌아갔다. 231에 따냈지만 흑에겐 당장 무슨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233으로 끝내기 하는 정도였는데 여기서 흑은 또 손해를 보았다.

그 다음 238로 끊자(이 수로 모든 노림은 해소됐다) 중앙에 때아닌 백집 3집이 생겼다.

이 3집 때문에 검토실은 잠시 난리가 났다. 반집 승부라는 설에서 역전된 것 아닌가까지 흥분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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