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공천권 이양 실험'살얼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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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7일 밤 영화 '왕의 남자'를 관람하기 위해 이재오 원내대표(오른쪽 둘째) 등 당직자들과 함께 서울 명보극장을 찾았다. 박 대표는 관람이 끝난 뒤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는가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공정하게! 깨끗하게! 당당하게!"

17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국회의원.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연석회의'에선 이런 문구가 적힌 타월들이 물결쳤다. 행사 부제는 '천막정신 초심으로 5.31 지방선거 승리!'였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표는 "최고로 깨끗한 선거를 치르자"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천막당사까지 들먹이며 당원협 운영위원장(옛 지구당 위원장)들을 불러 모아 자정결의대회를 연 까닭은 '정치 실험'의 성공을 위해서다.

지방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의 실험은 공천권 이양이다. 이날 오전 한나라당은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서울시.경기도.전남도 당의 공직자후보추천심사위원회(공심위) 구성을 의결했다.

서울 공심위원장은 권영세 의원, 경기도 위원장은 홍문종 도당위원장이 맡았다. 이로써 15개 시.도 당 공심위 구성이 끝났다.

지난 선거까지 한나라당엔 공심위가 중앙당에만 있었다. 공천은 늘 총재나 주요 당직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난해 말 한나라당은 당규를 바꿔 공천권을 나눴다.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의 공천은 여전히 중앙당 공심위가 한다.

그러나 공심위가 3배수 정도 후보를 압축하면 경선으로 결정짓는다. 광역의원.기초단체장.기초의원 공천은 아예 시.도 당 공심위가 맡는다. 심사를 통해 후보군을 확정하면 경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최종 후보를 가름한다.

이런 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높게 평가한다. 김민전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한나라당의 이번 공천은 중앙 공천과 개인 공천을 타파하는 공천 민주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험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공천권 행사를 일일이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심재철(안양 동안을)의원은 국회 박 대표의 방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경기 공심위 인선이 잘못됐다"며 재구성을 주장하는 시위였다. 당분간은 이런 잡음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자칫 공천 헌금이라도 오가다 발각된다면 '차떼기 정당' 이미지를 힘들게 씻은 한나라당으로선 치명적이다. 이날 박 대표의 연설에서도 이런 위기 의식이 느껴졌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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