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캐비닛 문건 속 '삼성 보고서' 박근혜-이재용 첫 독대 직전 작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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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된 ‘삼성 보고서’가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독대 직전에 작성된 정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전 청와대 행정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 지시로 작성" #'長 삼성 승계 모니터링' 고 김영한 수석 수첩 증거 채택 #변호인, "정부가 승계 도움 주더라도 합법적 테두리 안"

보고서를 작성한 이영상(44) 전 청와대 행정관(현 대검찰청 범죄정보1담당관)은 이를 지시한 인물이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병우(50) 전 민정수석이라고 증언했다.

청와대에서 발견된 박근혜 정부의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연합뉴스]

청와대에서 발견된 박근혜 정부의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받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진동) 심리로 25일 열린 이 부회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담당관은 “2014년 6월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파견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 전 수석으로부터 ‘삼성에 대해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냐’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담당관은 “보고서 작성 시기는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지만 e메일 출력물 등 날짜를 종합해 봤을 때 2014년 7~9월 무렵”이라며 “(우 전 수석으로부터) 삼성에 대한 검토를 지시 받았고, 당시 언론 등에서 이건희 회장의 와병을 많이 거론하던 상황이라 그런 내용을 보고서에 많이 담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9월 15일 대구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첫 단독 면담을 했다.

첫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주고 승마 유만주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게 특검팀의 주장이다.

이 담당관은 “지시자(우 전 수석)가 최종 승인한 뒤 보고서가 완성됐다”고 증언했다. “우 전 수석에게 중간 보고를 하고 피드백과 추가 리서치 등을 거치면서 보고서 방향이나 기조 등이 결정된 것이냐”는 질문에도 이 담당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우 전 수석이 ‘삼성에 대해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선 이 담당관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쓴 메모 사본 두 장도 공개됐다. 해당 메모는 청와대 캐비닛에서 삼성 보고서와 함께 발견됐다. 이 담당관은 “자필로 쓴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자료를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모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 모색’ ‘윈윈 추구할 수 밖에 없음’ 등의 내용이 기재돼있다.

이 담당관은 “메모 내용 중 어떤 부분이 최종 보고서에 들어가고 빠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주 초기단계 메모가 아닌 것 같아 메모의 전반적인 기조가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이날 재판에서 2014년 6월20일에 작성된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증거로 제출했다. 수첩엔 ‘長(김기춘 비서실장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 삼성그룹 승계과정 모니터링’이란 내용이 기재돼있다.

특검팀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6월20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삼성 승계 과정 모니터링을 논의한 정황”이라며 “그 다음인 7~9월 민정수석실에서 삼성 리포트가 작성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청와대가 그 무렵 이 부회장의 승계 등 삼성 현안을 인식하고 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해당 수첩을 증거로 채택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삼성의 ‘부정 청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준모 변호사는 “민정비서관에게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지 않냐”고 질문했고, 이 담당관은 “그런 기억은 없다”고 답했다. 이 담당관은 “정부가 삼성에 어떤 도움을 주더라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 안에서 검토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인은 또 “특검팀이 제시한 메모가 원본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며 증거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해당 문서가 발견된 곳은 대한민국 사정기관을 관장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인데 특혜 관련된 보고서가 작성될 리 만무하다”며 “우 전 수석은 삼성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수사한 특수부 검사였기 때문에 삼성에 우호적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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