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따르는 장례 문화의 상당 부분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다.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각종 의례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번잡하다며 '의례준칙'을 발표했다.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지난 2015년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혼상제가 우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이를 바꿔 일제 식민통치를 더 굳건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의례준칙은 우리 전통 장례 문화 곳곳에 침투했다. 지금은 전통 수의의 대표가 된 삼베 수의도 일제의 영향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래서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간혹 출토되는 조선 시대 수의를 보면 대개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어졌고 화려하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삼베 상복을 입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 학예연구관은 “일제가 만주사변·중일전쟁·2차대전 등 전쟁에 동원할 자원과 물자를 약탈해 가면서 조선의 경제 사정은 궁핍해졌다. 그러면서 좀 더 구하기 쉬운 삼베 수의가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고 2015년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상복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제는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屈巾祭服·거친 삼베로 만든 옷)을 생략하고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했다. 유족이 한복이나 일본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 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했다.
장례식장의 꽃도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고 한다. 전통장례에 사용된 꽃은 과거엔 상여에 다는 '종이꽃'이 전부였다. 특히 요즘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꽃 장식은 100% 일본식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리 전통은 영좌 뒤에 병풍을 치는 것이었다. 영정 주변에 꽃을 계단형으로 꽂고 높게 쌓아 올리는 스타일은 2000년대 일본 방식으로 알려져있다.
정우영 인턴기자 chung.woo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