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80세 딸 100세 엄마, 노노부양 짐 줄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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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어머니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어도 80세 딸의 소득(재산 포함) 때문에 국가 지원을 못 받는 일이 사라지게 됐다. 자신도 부양받아야 하는 자녀 노인에게 90세 전후의 부모 부양의무를 지우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중앙일보 4월 11일자 1, 10면>

추경에 부양의무 완화 예산 포함 #11월부터 중증장애인 등 4만 가구 #가족소득 하위 70% 땐 정부 지원 #비수급 빈곤층 117만 명 고통 #“소득기준 대폭 완화 근본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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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21일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에 국민기초생활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데 필요한 490억원이 포함돼 11월 시행한다”고 23일 밝혔다. 부양의무자와 기초수급자 양쪽 모두 노인·중증장애인(부양의무자는 소득 하위 70% 이하)인 4만1000가구가 해당한다. 이 중 2만 가구는 생계비·의료비·주거비를, 이들을 포함한 3만5000가구는 생계비·의료비만 받는다. 나머지 6000가구는 주거비만 지원된다. 이번 완화 조치에 11~12월 두 달간 490억원이 들어간다. 내년에는 294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번 조치의 특징은 노인·중증장애인의 부양 부담 완화다. 지금은 노인의 소득인정액이 일정 기준(4인 가구 월 513만원)을 넘으면 부모 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자녀가 극빈 생활을 해도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또 소득인정액이 447만~512만원이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긴 하지만 부모에게 가는 생계비가 깎인다. 그러나 11월부터는 소득 하위 70% 이하에 들면 소득인정액을 따지지 않고 부모 노인이나 중증장애인 자녀의 소득인정액만 따져 기준(1인 가구 49만5879원 미만)에 해당하면 기초수급자가 된다. 양동교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서민의 민생 안정을 기하기 위해 이번 예산을 편성했다”며 “부양의무를 진 노인·중증장애인 같은 가장 시급한 저소득층부터 반영했다”고 말했다.

규제가 완화된 대표적인 가구가 ‘노인 자녀-노인 부모’ 유형이다. 65세 노인이 90세 전후의 부모를 부양하는 짐부터 덜어냈다. 지난 4월 본지가 보도한 광주광역시 장은순(80·여)씨의 어머니(100)가 혜택을 볼 수 있다. 다만 장씨의 50대 동생 두 명의 소득인정액이 기준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경우 100세 노모는 매달 약 50만원의 생계비를 받고 의료비(건강보험 적용 진료비)가 면제된다.

중증장애인 가정도 혜택이 넓어진다. 중증장애인 자녀를 둔 노인 가정, 자녀와 부모 양쪽 다 중증장애인인 가정이 이번 조치의 혜택을 보게 된다. 중증장애인은 1~3급 장애(부양의무자는 1~2급, 3급 중복) 판정을 받은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혜택을 보는 4만1000가구는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에 빈곤 생활을 하는 ‘비수급빈곤층’ 117만 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가 빈곤층 구제의 급한 불을 끄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보다는 노인 가구 재산의 소득 환산 기준을 대폭 낮추는 식의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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