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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 정화한다며 ‘요나의 묘지’ 폭탄으로 날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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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15면

[글로벌 뉴스토리아] 극단주의 IS의 반달리즘 현장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배하던 이라크 북부 유전도시 모술이 지난 9일 정부군의 손에 탈환됐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해방’을 선언했다. 2014년 6월 IS 점령 이후 3년, 탈환을 위한 ‘모술 전투’ 개시 9개월 만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공존했던 모술 #‘내 믿음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악’ #IS 점령하며 인류 문화유산 말살 #‘중동 피사의 사탑’ 폐허로 변해 #모스크도 장식 있으면 파괴 자행

한때 인구 184만으로 이라크에서 수도 바그다드 다음으로 큰 도시였던 모술의 탈환은 극단주의 축출, 석유자원 회복 등 국제 정치·경제적 측면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바로 인류문화사적인 가치다. 모술은 이 지역에선 드물게 민족적·종교적·문화적 다양성과 공존을 자랑하던 메트로폴리탄 도시였다. 풍부한 문화·역사·종교적 유적과 유물이 넘치던 도시를 IS의 손에서 탈환해 문명 세계로 되돌린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2 기울어진 첨탑으로 유명했던 모술 알누리 대모스크의 폭파 전 모습.

2 기울어진 첨탑으로 유명했던 모술 알누리 대모스크의 폭파 전 모습.

전 세계는 이 과정을 지켜보다 놀라운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반달리즘(문화유산 파괴)의 현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12세기에 지어진 알누리 대모스크다. 45m 높이의 기울어진 미나리트(이슬람사원의 첨탑)로 유명하다. 알누리 대모스크는 이 때문에 알하드바(척추장애인)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중동의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했다. 850년간 갖은 전란에서도 꿋꿋하게 버텼지만 지난 6월 21일 모술 전투 도중 폭발로 폐허가 됐다. 이라크군은 IS의 반달리즘이라고 했지만 IS는 미군 공습으로 파괴됐다고 선전했다. BBC방송은 목격자 증언과 비디오 자료 등을 종합해 건물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알누리 대모스크는 IS 창시자 아부바카르 알바그다디가 2014년 6월 스스로 칼리프(초기 이슬람 세계의 정치·종교 일치 군주)로 즉위했던 장소인데 IS가 이런 ‘성지’를 적의 손에 내주느니 차라리 파괴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문제는 IS의 반달리즘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술은 중동의 메트로폴리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 등에 따르면 모술에선 아랍인이 주류지만 쿠르드인과 야지드인·아시리아인·아르메니아인·투르크멘인·샤바크인·만데아인·카윌리인·시르카시아·유대인·집시 등 수많은 소수민족이 뒤엉켜 살았다. 종교적으로도 지역 주류인 이슬람 수니파는 물론 시아파와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파도 존재했다. 역사책에나 등장했던 네스토리우스파(예수의 삼위일체설을 인정하지 않는 종파)인 아시리아 기독교를 비롯해 아르메니아정교·칼데아가톨릭·시리아정교 등 기독교와 야지드교·샤바크교·야르시니교·만데아교 등 실로 다양한 소수종교가 존재했다. 이슬람 이전 이웃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 신자도 있었고 인도와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불교도·힌두교도도 소수 존재했다. 역사책에 나오는 바빌론유수 때 건너온 유대인의 후손도 살았다.

3 모술 동부에 있는 고대 아시리아 수도 님루드의 유적. IS가 2015년 3월 불도저로 밀었다. [중앙포토]

3 모술 동부에 있는 고대 아시리아 수도 님루드의 유적. IS가 2015년 3월 불도저로 밀었다. [중앙포토]

다민족·다종교·다문화 도시인 만큼 모술에는 역사 유적과 건축미나 장식이 뛰어난 모스크·교회·수도원·성채·학교 등 고대와 중세의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유물로 가득 찼다. 모술을 가로지르는 티그리스강 동쪽의 평원에는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고대국가 아시리아(기원전 25세기~기원전 605년)의 수도였던 니느웨(니네베)와 님루드의 유적도 있다. IS는 2015년 2월 26일 모술 박물관에 난입해 아시리아 유물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거나 훔쳐갔으며 3월에는 님루드 등의 유적을 불도저와 망치 등으로 조직적으로 부순 것으로 전해졌다.

구약성서 유적과 기독교회 초토화

1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의 묘로 알려진 유누스 모스크. IS가 배교의 장소라며 파괴했다.

1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의 묘로 알려진 유누스 모스크. IS가 배교의 장소라며 파괴했다.

모술은 구약성서에 예루살렘을 점령한 나라로 등장하는 아시리아의 수도가 자리 잡았던 곳이라 관련 유적이 상당하다. IS는 이를 조직적으로, 철저히 파괴했다. 대표적인 곳이 구약성서 ‘요나서’의 주인공인 예언자 요나의 묘지다. 요나는 니느웨의 고대 아시리아 궁전 터에 묻혔는데 그 자리에는 아시리아 교회에 이어 이슬람의 ‘예언자 유누스(요나의 아랍어) 모스크’가 들어섰다. 구약에 따르면 요나는 아시리아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심판 설교를 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치려다 배가 풍랑을 만나 물고기(고래로 추정) 배 속에 사흘간 갇혀 지내면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다. 이슬람 전승에도 예언자 무함마드가 자신에게 포도를 가져다준 시종 아다스가 고향을 묻는 질문에 니네베 출신이라고 하자 “요나의 도시”라고 외친 뒤 자신과 요나가 같은 예언자 ‘형제’라고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이 모스크에는 요나의 고난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고래 이빨도 전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뉴스에 따르면 IS는 이 모스크와 묘지가 ‘기도가 아닌 배교의 장소가 되고 있다’며 2014년 7월 24일 폭탄으로 날려버렸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이자 카인과 아벨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세트를 기리는 사원도 2014년 7월 26일 파괴됐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예언자 다니엘의 묘지로 알려진 유적도 2014년 7월 폐허가 됐다. 다니엘의 묘지로 알려진 전 세계 6곳 중 하나다.

IS는 이라크에서 기독교도가 가장 많은 모술에 입성한 즉시 모든 기독교회 파괴령을 내렸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유적인 다이르 마르 엘리아(성 엘리아) 수도원은 그해 8~9월 파괴됐다. 595년 칼데아 가톨릭 교회 소속 엘리아 신부가 세운 것으로 기독교도들의 순례지였다. 1743년 이곳에 쳐들어온 페르시아인들이 개종을 거부한다고 신부와 수사 150명을 학살한 순교 성지이기도 하다. 이후 유적만 남아 있었는데 IS는 이마저도 폐허로 만들었다. IS는 아시리아 정교의 성모마리아 교회도 2014년 7월 산산조각 냈다. 10세기에 지어진 칼데아 가톨릭 교회인 성마르쿠르카스 교회도 2015년 3월 9일 무너뜨렸으며 인근에 있는 기독교도 공동묘지는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장식체 아랍문자면 ‘알라’ 글씨도 부숴

IS는 이슬람 공동체의 중심인 모스크도 장식 요소나 벽화가 있으면 무조건 제거했다. 심지어 쿠란 구절이나 ‘알라(신)’라고 적은 글씨도 장식체 아랍문자로 적었으면 예외 없이 부쉈다. ‘잘못된 창작이며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지역 이맘(이슬람 예배 지도자)이 신의 이름이 적힌 글자를 부술 수 없다며 반대하자 IS는 사살로 대응했다.

이슬람의 기하학 수준을 보여주는 원뿔 모양의 독특한 돔과 정밀한 기교를 자랑하는 벽돌 장식, 모술산 푸른 대리석에 새긴 아랍어 붓글씨 등으로 이슬람 장식미술의 보고로 불리던 마샤드 야흐야 아불 카셈 모스크도 2014년 7월 23일 IS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2014년 7월 25일에는 13세기 몽골 침략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유서 깊은 이슬람 사원인 이맘 아운 알딘 사원이 뒤를 이었다. 1881년 오스만튀르크 지배 시절 시내 중심부에 건립된 하무카도 모스크는 장식이 없는데도 파괴했다. 현지 주민들이 내부의 무덤을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미신행위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2015년 3월에는 1880년에 지어진 아무 알카두 모스크를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기원 640년에 처음 건설된 우마이드 모스크도 IS의 파괴에서 살아남았으나 모술 전투 중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IS는 문화재 파괴행위를 ‘종교적 정화행위’라며 합리화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인 살라피즘(또는 와하비즘)은 유일신 알라를 믿는 것 외에 미신적이고 이교적인 요소인 시르크(다신교)를 추방하는 엄격한 정화행위를 통해 ‘타위드’, 즉 유일신인 하나님과의 일체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IS는 자신들이 이라크의 모술과 시리아의 팔미라 등지에서 저지른 문화유산 파괴 행위를 수니 이슬람의 전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무슬림 통치자들은 7세기 이슬람이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역사적인 문화유산에 손을 댄 적이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이라크의 고대 바빌론과 아시리아 유적이 지금까지 온전했던 이유다. IS의 주장이 이슬람 세계에서 허구로 통하는 이유다. 다만 살라피즘을 추종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사우드 왕가가 1801년 지금 이라크 남부 카르발라를 점령해 시아파 성지를 ‘다신교 풍습’이라며 파괴한 전력은 있다.

IS는 문화재 파괴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들이 극단주의 세력의 구심점임을 선전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피지배층에게 저항 의지를 억누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어차피 옮길 수 없는 건축물이나 유적만 파괴하면서 쉽게 유출할 수 있는 중소형 문화재를 유럽과 북미 등으로 밀수출해 돈을 벌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실제로 유엔이 2011년부터 시리아 등지의 골동품 거래를 금지했음에도 IS의 인류 문화유산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BBC의 보도다.

IS는 카타이브 타스위야(정착 대대)라는 특수부대를 운영하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문화재를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문화적 청소”라고 비판했다. 보코바 사무총장은 극단주의자들의 반달리즘으로부터 문화유산을 지키는 유나이티드포헤리티지(Unite4Heritage) 운동을 벌이고 있다. 모술 탈환으로 IS 반달리즘과 민족적·종교적·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위협이 추가로 확인되면 이 운동이 글로벌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임을 모술은 잘 보여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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