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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진정한 휴식’을 찾아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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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07면

여름휴가 이색 체험 직접 해보니 <상> 전등사 템플스테이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는 말로 이 시대의 한 특징을 잡아냈다. 피로사회의 다른 말은 성과사회다. 스스로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성공을 향해 끝없이 질주한다는 얘기다. 피로의 누적이 초래하는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하나가 우울증이라 했다. 휴식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저마다 달려가기에 바쁘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나는 어떤가.

피로사회 탈출 산사 체험 #마음의 집착 내려놓는 연습 #전국 사찰 120여 곳 시행 #체험형과 휴식형 중 선택 #예불·명상·산책·스님과의 차담 #다양한 휴식 기술 맛보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고, 잘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쉬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에 가서 어떻게 쉬어야 제대로 쉰 것일까. 강과 바다, 섬마을과 해외 주요 코스를 두루 다녀봤어도 뭔가 부족했다고 느꼈다면 올해는 템플스테이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7월 19일 새벽 4시 강화도 전등사. 한 스님이 목탁을 치고 불경을 낭송하며 사찰 경내를 돌고 있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소리가 서서히 나를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아직 동은 트지 않았다. 사방이 캄캄한데 종루에는 벌써 범종을 치는 스님이 나와 서 있다. 우-웅-웅-웅웅…. 장엄한 타종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는 가운데 예불이 시작됐다.

15분 정도 진행되는 예불은 어렵지 않았다. 하루 전날 사찰에 도착해 입소할 때 템플스테이 담당 김태영 팀장이 초보자가 절하는 방법에서부터 1박2일의 구체적 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다 기억 못해도 상관없다. 스님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엄마와 함께 참여한 중학생과 초등학생 형제가 보였다. 평소 익숙하지 않을 새벽 시간일 텐데 일찍 법당에 나와 자리를 잡고 제법 엄숙한 모습으로 절을 한다. 천주교 성당을 다닌다는 엄마는 지인의 소개로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느낌이 좋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보내는 것 같다”고 했다.

템플스테이는 전통 문화가 남아 있는 산사에 머물며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에서부터 제주까지 전국의 사찰 130여 곳에서 연중 시행하고 있다. 예불·명상·산책·발우공양·스님과의 차담 등으로 일정이 구성된다. 체험형과 휴식형 두 가지로 형식이 나뉘는데 참가자가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 체험형은 정해진 일정이 세분화돼 있다. 이에 비해 휴식형은 개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여름휴가 기간에는 청소년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대개 산속에 사찰이 있기 때문에 더위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밤에는 장소에 따라 선선한 바람도 분다. 샤워 시설도 갖춰져 있다.

템플스테이까지 와서 뭘 특별히 하겠다고 긴장하거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새롭게 해보는 것이 있다면 명상이다. 눈을 감아도 좋고, 뜨고 해도 상관없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도 있고, 걷거나 밥을 먹으면서 할 수도 있다. 고요한 침묵 속에 호흡을 가다듬는다.

불교 명상 체험이 내게 처음은 아니다. 2003년 8월 유럽의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려 크게 화제가 되었던 여름에 틱낫한 스님이 주석하는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 있는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Plum Village)에서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불교 명상의 중심에는 휴식이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몸만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쉬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쉬는 다양한 기술이 불교에는 260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다. 불교에서 휴식을 일러 ‘휴휴(休休)’ ‘휴헐(休歇)’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쉬고 또 쉰다는 의미로 풀 수 있는데, 제대로 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무엇을 내려놓는가. 나의 몸과 마음이 지은 모든 행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다. 내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화를 내곤 한다. 그런 분노와 원망, 질투와 어리석음과 괴로웠던 기억,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면 아무리 몸을 쉰다고 해도 제대로 휴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집착과 휴식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지원 스님(삼보사·육지장사 회주)의 설명은 기억해둘 만하다. “선가(禪家)에서는 최고의 경지인 깨달음에 대한 것마저도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하물며 세속적인 집착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집착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쉴 줄 아는 사람이며 이것이 바로 행복과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지원 스님 지음 『손으로 쓰고 마음으로 그리는 지장기도』)

집착을 내려놓기가 어디 쉬운가. 그래서 필요한 게 연습이다. 참선과 명상과 염불 등이 모두 휴식의 기술이다. 템플스테이는 그 기본기를 맛보는 장이다. 전등사 조실 세연 스님은 올해 77세인데도 연습을 계속 하고 있었다. 첫날 저녁 공양을 마치고 차담을 나눌 때 스님은 소탈한 모습으로 경험을 들려주었다. 52세 때부터 최근까지 25년 동안 매일 7~8시간 염불을 했다고 한다. 요즘은 너무 힘들어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의 ‘관찰’을 연습한다고 했다. 눈으로 코를 관찰하고, 코로 마음을 관찰하는 식이다. 왜 52세가 돼서야 연습을 시작했느냐고 물으니까 젊어서 일찍 사찰의 살림 돌보는 일을 맡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 연습을 많이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했다. 세연 스님의 ‘관찰’은 틱낫한 스님이 중시한 ‘마음 챙김’과 비슷하다. 마음 챙김이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느낌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알아차릴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전등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 잡고 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나무의 높이가 20m, 둘레는 4.6m다. 주변을 둘러싼 건물, 숲과 조화를 이루며 전등사를 찾는 이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왼쪽 옆에 범종루가 보인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 모든 중생의 번뇌가 사라지길 기원하는 타종 의식이 진행된다. [사진 전등사]

전등사 대웅전 앞뜰에 자리 잡고 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나무의 높이가 20m, 둘레는 4.6m다. 주변을 둘러싼 건물, 숲과 조화를 이루며 전등사를 찾는 이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왼쪽 옆에 범종루가 보인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 모든 중생의 번뇌가 사라지길 기원하는 타종 의식이 진행된다. [사진 전등사]

법당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날이 밝았다. 스님들이 마당을 쓸고 있다. 반복되는 일과다. 700년이나 됐다는 은행나무,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 280년을 살고 있는 단풍나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찰에서는 음식을 먹는 일을 공양(供養)이라고 한다. 자기가 먹을 만큼 담아 남기지 않고 깨끗이 그릇을 비운 후 스스로 설거지한다. 탐욕을 줄이는 연습이다. 아침 공양을 마친 후 전등사 뒤편의 정족산성(삼랑성)에 올랐다. 한적한 숲길을 걸었다. 전등사 경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내리쬐는 햇살이 조금씩 뜨거워진다. 무엇인가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 가다가 멈추고 관찰하기를 계속했다. 멈춰야 내가 보인다.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멈추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멈추기는 불교 명상 수행의 기본이다. 달리기를 멈춰라. 다툼을 멈춰라. 그리하여 너를 쉬게 하고 치료받게 하고 고요하게 하라.”(틱낫한 스님의 잠언 모음집 『너는 이미 기적이다』)

정족산성의 서문에서 남문을 거쳐 다시 전등사로 돌아왔다. 경내는 여전히 고요하다. 현대식으로 지은 법당인 무설전(無說殿) 안으로 들어가 땀을 식히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등사 주지 승석 스님은 차를 끓여 따라주며 “잠시 머무는 템플스테이 체험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의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말 없는 말, 마음의 대화가 이어진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다.


템플스테이 참여, 홈페이지 사전 예약 필수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려면 홈페이지(www.templestay.com)를 방문해 원하는 사찰과 가능한 일정을 확인한 후 온라인으로 신청한다. 사전 예약이 필수다. 서울 견지동 조계사 앞에 위치한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02-2031-2000)를 방문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개별 사찰에 직접 연락해도 된다. 단체 참가의 경우 일정 조정이 가능하다.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영어 안내도 받을 수 있다.

체험형과 휴식형 두 종류 중에 원하는 형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체험형은 주말에만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신청서를 전송한 후 해당 사찰로부터 예약 승인 문자가 오면 참가비를 송금한다. 참가비는 1박2일 성인 1인 기준 5만~7만원 정도다. 수련복은 사찰에서 지급한다. 세면도구와 수건, 수련복 상의 속에 받쳐 입을 얇은 셔츠를 준비해야 한다. 신발은 운동화나 등산화가 좋다. 노출이 심한 민소매, 반바지, 맨발 등은 피하자. 대부분의 사찰이 산속에 있으므로 긴 소매 옷을 하나 준비해 가는 것도 좋겠다.

숙소는 남녀를 구분해 사용하는데 가족인 경우 사찰에 따라 별도로 제공하기도 한다. 교통편은 사찰 인근의 역이나 터미널로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체험형을 선택할 경우 108배 절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종교적 이유로 절하기가 불편하면 조용히 앉아 있어도 된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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