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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신기루인가 오아시스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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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김환영 논설위원

김환영 논설위원

4차 산업혁명은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6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의 핵심 화두였다. 확장성·파급성이 뛰어난 주제였다. 우리 출판 시장에서도 ‘급격한 성장’을 예고하는 4차 산업혁명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4차 혁명 긍정하건 부정하건 #앞으로 정책 핵심은 교육혁신 #물론 공평·평등도 중요하지만 #21세기 생존 스킬 가르쳐야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고든 석좌교수(경제학)가 쓴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장밋빛 전망에 제동을 건다. 고든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확인차 고든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든 교수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저성장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고든 교수는 자신이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덕분에 ‘기술 비관론’ ‘성장 비관론’의 대표 격이 됐으며 “반대파가 반박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고 현지 학계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 정치권에서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 역할을 해 온 정치인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의원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4차 산업혁명 인재 10만 명 육성’을 공약했다. 안 전 의원이 ‘4차 산업혁명은 신기루’라는 식의 주장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다음과 같은 멘트를 받을 수 있었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패러다임 변화의 시기임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엽적인 대응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 가장 중심에 교육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0년 후에는 의료 현장에 인공지능(AI)이 진단의 주체로 참여하는 환경이 된다면 현재 의대생들 교육을 이대로 두면 되겠습니까.”

“4차 산업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혁신의 물결은 분명히 인류에게 오고 있다”고 말하는 박영아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2013~2016) 또한 문제의 핵심이 교육이라고 판단한다. “각 개인이 21세기에 필요한 네 가지 스킬, 즉 문제해결능력, 비판적 사고, 창조성, 협동지성을 갖출 수 있는 국가의 교육·학습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가.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을 신기루가 아니라 오아시스로 만들 수 있는 기본 전제조건이다”는 것이다. 교육 현장의 현실에 대해 그는 “한국의 교육은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수월성의 조화를 지향해야 한다. 하향평준화·균일화·정량화·규제는 답이 될 수 없다”며 후한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의 제리 카플란 펠로 또한 박영아 박사가 말한 스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필요 없다』의 저자인 카플란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스킬이 미래에도 경제적인 가치가 있게끔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흥미롭게도 4차 산업혁명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고든 교수 또한 앞으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의 고성장기에 교육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앞으로 수년 혹은 수십 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 원칙이나 정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미국에 국한시켜 대답하겠다”며 “미국은 교육 체제를 급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예시한 개혁은 예상과 달랐다. 고든 교수는 빈곤층 학생, 특히 한부모 가정의 학생들에게 개인수업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부모 가정보다 말을 들을 기회가 현저히 제한되기 때문에 일단 어휘력 격차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대선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부모의 지갑 두께가 자녀의 학벌과 직업을 결정할 수 없게 공평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겠다”며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공평한 교육기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공평·평등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우리는 국내 사회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회의 일원이다. 공평·평등에는 글로벌 차원이 있다. 다른 나라 학생들과 달리 우리나라 학생들은 ‘인공지능 시대’ 생존에 필요한 ‘미래에도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스킬’을 배울 수 없다면 이 또한 불공평하다. 1894년 과거제 폐지로 멋진 한문 문장으로 답안지 쓰는 능력이 휴지조각처럼 됐다. 비슷한 일이 수십 년 내로 들이닥칠 수 있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학교 교육의 90%가 30년 뒤엔 쓸모 없다”고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신기루가 될지 오아시스가 될지 알 수 없는 지금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빠지지 않을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공통분모는 교육개혁이다. 교육개혁에 평등만 있고 21세기 스킬 교육이 빠져 다음 세대가 우리를 원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환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