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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강남스타일’ 흥얼거리며 남극 횡단”…남극·북극점 최초 도달한 탐험가는 왜 환경운동가 됐나

중앙일보

입력

최근 방한한 탐험가 로버트 스완(오른쪽)과 아들이자 탐험 동반가 바니 스완. 김춘식 기자

최근 방한한 탐험가 로버트 스완(오른쪽)과 아들이자 탐험 동반가 바니 스완. 김춘식 기자

한반도 면적(22만㎢)의 60배가 넘는 북극과 남극(각 1400만㎢)의 평균 기온은 영하 30도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이는 ‘동·식물의 자생(自生)이 어렵고, 모든 액체가 얼어붙는 온도’라고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가늠키 어려운 날씨다.

인류 최초 남극·북극점 도달한 영국인 로버트·바니 스완 부자 #오존층에 눈동자 색깔 바뀐 계기로 환경운동가 변신 #아들과 매년 남극 들려 지구 온난화 체감 #남극 오래 걷는 비법? “리드미컬한 강남스타일(K팝) 듣는다” #"내년엔 한국, 북한 젊은이를 남극 탐험 참여 계획"

30년 전 맹추위를 뚫고 인류 최초로 남극·북극점(點)에 도달한 영국인이 있다. 182㎝·90㎏ 체격으로 올해 61세인 로버트 스완. 1986년 1월 남극점, 89년 5월 북극점에 도달한 그는 91년 ‘2041’이란 환경재단을 세운 이래 환경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재단명은 미국·중국·러시아 등 50개국이 남극에서 채굴 활동을 못 하도록 한 남극조약의 만료시기(2041년)를 따 작명했다.
최근 방한한 스완을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있는 비영리 공익재단 ‘W재단’의 남극·북극 보전 캠페인 런칭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대학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의 ‘탐험 메이트’가 된 외아들 바니(23)도 함께 했다. 이날 런칭 행사를 앞둔 부자(父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로버트 스완과 바니 스완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로버트 스완과 바니 스완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방한 계기는.
“영국·미국에 이어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권은 멀지 않아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글로벌 리더가 될 한국 젊은이에게 (빙하와 관련한) 해양 환경과 지속 가능한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이 일환으로 아들과 오는 11월부터 두 달간 600마일(1100㎞)의 남극 탐험 일정을 밝혔다. 친환경 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태양열 썰매로 남극을 횡단한다는 계획이다.”

-환경 운동가로서 주요 업적은.
“96~97년 30여 명의 젊은 탐험가와 추진한 ‘남극의 도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남극에 버려진 1500t의 쓰레기를 회수하는 작업이었다. 쓰레기를 거둔 자리에는 해양 과학자를 위한 교육 시설인 ‘이베이스’를 세웠다. 2003년부터는 ‘뜻을 세우는 남극 탐험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매년 3월 세계 각지서 모집한 젊은이 80명과 남극을 2주간 둘러보며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취지다.”

2014년 남극에서의 로버트 스완. [로버트 스완 제공]

2014년 남극에서의 로버트 스완. [로버트 스완 제공]

매년 초 열리는 '뜻을 세우는 남극 탐험대'에 참가한 젊은이들. [로버트 스완 제공]

매년 초 열리는 '뜻을 세우는 남극 탐험대'에 참가한 젊은이들. [로버트 스완 제공]

-탐험가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이유는.
“내가 남극 탐험에 성공한 86년은 프레온가스(CFC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요인이란 점이 밝혀진 해였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로 남극 탐험을 하다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됐고 신체 변화가 생겼다. 짙은 파란색이던 눈동자가 옅은색으로 바뀌었고, 피부에도 여러 증상이 나타났다. ‘자연의 붕괴가 인간 생존을 위협하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북극 탐험(89년) 땐 대원을 모집한 뒤 현지서 교육 목적 영상도 촬영했다.”

스완은 91년 UN 청년친선대사, 이듬해 유네스코(UNESCO) 특사로 환경 운동을 펼쳤다. 95년엔 리즈대 환경대 방문교수로 지냈다. 2014년 ‘마지막 남은 자연 그대로의 남극을 살리자’란 주제의 TED 강연은 수백만 명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인류 최초로 북극·남극을 횡단한 30년 전 대기록은 그가 환경운동가·강연가로 활동하는데 발판이 됐다. 그때 기억을 물었다.

1986년 북극점 도달 당시의 로버트 스완. [로버트 스완]

1986년 북극점 도달 당시의 로버트 스완. [로버트 스완]

-남극과 북극 탐험의 첫 계기는.
“어릴 적이던 60~70년대는 미국, 소련의 냉전 시기였다. ‘전쟁이 없는 유일한 곳’은 남극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우연히 본 영화 ‘남극의 스코트’(1948년)도 계기였다. 영국 해군 장교인 로버트 스콧(1868~1912)이 인류 첫 남극 도달을 도전하다 숨진 실화를 그려낸 영화다. 말미에 주인공들이 숨지는 장면을 본 뒤, ‘난 남극에서 생존하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탐험을 어떻게 준비했나.
“영국 더햄대(고대역사 전공)를 졸업한 뒤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7년간 남극 탐험에 필요한 돈을 벌었다. 내 남극 탐험 계획을 들은 지인들은 ‘심리 치료나 받으라’며 비아냥거렸지만, 탐험 보트 마련을 위한 기업 후원까지 얻는 등 도움을 줬다. 후원금 500만 달러(56억원)로 ‘남쪽 탐험대’(Southern Quest)란 명칭의 배를 마련했다.”

-남극 탐험 중 고비는.
“베이스 캠프와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다. 70일 동안 손목시계와 나침반에 의존했다. 식량이 떨어졌을 땐 몸무게가 30㎏이나 빠졌다. 나를 버티게 해 준게 꿈과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끈기였다.”

2016년 남극 횡단에 함께 한 바니 스완(왼쪽)과 로버트 스완. [로버트 스완 제공]

2016년 남극 횡단에 함께 한 바니 스완(왼쪽)과 로버트 스완. [로버트 스완 제공]

-아들도 탐험가의 길을 걷는 이유는.
“(바니 스캇) 어릴 적 역사 서적을 읽던 내게 아버지는 ‘탐험에 도전해보라’(Come off the map)며 권했다. 7살 때 아버지와 보트를 타고  남극의 조그마한 섬들을 둘러봤는데, 남극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성인이 된 후엔 매년 아버지와 남극에 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체감한다. 장시간 얼음길을 걸을 땐 리드미컬한 K팝 ‘강남스타일’을 들으며 심심함을 달랜다.”

이번이 첫 방한이라는 스완 부자는 2박3일간 짧은 한국 일정을 마친 뒤 ‘2041’ 재단이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에 돌아갔다. 내년 탐험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분쟁 국가 출신 젊은이를 매년 남극 탐험에 모집한다는 그는 “내년엔 한국과 북한 학생을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스완은 “지구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우리의 노력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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