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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나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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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이스 킬머(미국시인.김욱동 역) '나무들' 전문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가 어디 있으랴
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에
마른 입술을 대고 서있는 나무
온종일 신(神)을 우러러보며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가슴에는 눈이 쌓이는 나무
비와 더불어 다정하게 살아가는 나무…
나 같은 바보도 시는 쓰지만
신 아니면 나무는 만들지 못한다



이 시를 두고 '생태시'니 '녹색시'니 하는 분류조차 부끄럽다. 다만 아름다울 뿐. 나무 위에 새집 같은 집을 짓고 나무와 바람과 신과 더불어 살고 싶다. 공룡처럼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자고 새면 "억! 억!" 비명처럼 뛰어오르는 아파트 값과 그것을 좇아 이리저리 떠밀리는 사람들. 어지러운 고가도로와 치솟은 고층 빌딩 숲을 바라보며 "여기가 지옥이야?"하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나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아름다운 친구. 언어의 보석이라는 시조차도 나무 앞에서는 불순하다. 나무처럼 아름답고 성스러운 시를 만들지 못하는 나 같은 시인은 정말 영원한 바보일 수밖에 없다.

문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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