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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전 국민을 경악케 한 샘물교회 피랍 사건

중앙일보

입력

샘물교회 선교단이 출국 당시 인천국제공항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 안내문 앞에서 찍은 사진.(왼쪽) 아프간 탈레반에 피랍 당시 알자지라의 방송 화면(오른쪽). [사진 중앙포토, 알자지라 방송 캡처]

샘물교회 선교단이 출국 당시 인천국제공항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 안내문 앞에서 찍은 사진.(왼쪽) 아프간 탈레반에 피랍 당시 알자지라의 방송 화면(오른쪽). [사진 중앙포토, 알자지라 방송 캡처]

10년 전 오늘 탈레반에 의한 샘물교회 교인 23명의 피랍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전 언론이 대서특필했고 온 국민의 관심이 모였다. 그 전까지 이름만 알려져 있던 이슬람 과격주의 세력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의 위험성이 온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순간이었다.

2007년 7월 13일 배형규 목사와 분당 샘물교회 교인 19명이 아프가니스탄에 단기선교 목적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14일 카불에 도착한 선교단은 현지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선교사 3명과 합류해 총 23명이 함께 움직였다.

10년 전 오늘 샘물교회 교인 피랍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중앙포토]

10년 전 오늘 샘물교회 교인 피랍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중앙포토]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2일 출국하여 23일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7월 19일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이동하던 일행 23명은 카라바그 지역에서 전원 탈레반에 피랍되었다.

7월 20일 탈레반은 한국인 23명을 납치하여 억류 중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이 즉각 철군할 것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수감한 탈레반 인원을 전원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됐던 19명의 한국인 인질이 석방됐던 당시 모습. [사진 국정원 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됐던 19명의 한국인 인질이 석방됐던 당시 모습. [사진 국정원 제공]

7월 22일 한국 정부 대책반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도착했다. 이후 협상을 하루하루 연장하던 탈레반은 25일 협상이 결렬됐음을 선언하고 인질 중 남자 1명을 살해했다. 26일 피살자는 배형규 목사임이 드러났다. 협상을 연장하던 탈레반은 30일 심성민 씨도 살해했다.

8월 7일 외교통상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했다. 10일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의 첫 대면 협상이 시작됐고 13일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던 여성 인질 2명이 석방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됐던 19명의 한국인 인질이 석방됐던 당시 모습. [사진 국정원 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됐던 19명의 한국인 인질이 석방됐던 당시 모습. [사진 국정원 제공]

8월 28일 아프간 현지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 대표반과 탈레반의 협상이 타결되어 남은 19명의 한국인 인질에 대한 전원 석방이 결정되었음이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은 아프간 파견 한국군의 연내 철수와 아프간에 개신교 선교단 파견을 중지한다는 등의 5개 항에 합의했다.

8월 29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중재 하에 인질 12명이 석방됐고 30일에는 남은 7명이 석방됐다. 먼저 석방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 19명은 9월 2일 한국에 도착했다.

탈레반 납치 사건이 터진지 열 하룻째인 29일 피랍가족모임 사무실이 마련된 분당 샘물교회에는 이른 아침부터 예배를 보기위한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탈레반 납치 사건이 터진지 열 하룻째인 29일 피랍가족모임 사무실이 마련된 분당 샘물교회에는 이른 아침부터 예배를 보기위한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사건 이후 대한민국정부가 탈레반에 대해 협상의 조건으로 과연 몸값을 지불했는지, 몸값을 지불했다면 얼마를 지불했는지가 국민적인 관심으로 떠올랐으나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정부와 탈레반 측은 몸값 지불설에 대해 부인했다.

당시 아랍위성방송인 알자지라방송의 앨런 피셔 카불특파원은 아프간 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 측이 탈레반에 현금을 건넸다"며 “약 2000만파운드(약 378억 원)를 지불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 신문은 8월 31일 협상을 중재한 아프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정부가 인질 19명 전원의 석방대가로 200만 달러(약 18억 원)을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사태 발생 당시 선교단원들이 출국장의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 안내문에서 기념촬영한 사진과 현지 활동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비난을 샀다. [사진 중앙포토]

아프간 사태 발생 당시 선교단원들이 출국장의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 안내문에서 기념촬영한 사진과 현지 활동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비난을 샀다. [사진 중앙포토]

사건 이후 국내외의 종교계 내외로부터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 활동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류상태 전 목사는 당시 "지난 2000년 동안 선교라는 이름으로 이웃 종교의 고귀한 삶의 자리와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를 얼마나 훼손했던가"라며 타종교인을 억지로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려는 공격적인 선교정책이 끊임없이 갈등을 낳는다고 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미국 시카고 잡지인 크리스천 센추리의 데이비드 하임 편집장의 말을 인용해 "한국 교회는 현재 미국 주류 교계에서 거의 쓰지 않는 19세기 방식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캡처]

[사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캡처]

샘물교회 선교단이 출국할 당시 인천공항엔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이라는 인천공항 테러보안대책협의회의 안내문이 붙어있었음이 알려지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외교부는 그해 2월 아프간 탈레반이 동료 석방을 위해 한국인을 납치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인천공항 출국장에 여행 자제를 요청하는 안내문을 설치했다. 2006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평화축제'를 통해 기독교 선교를 강행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간 대통령이 한국인 24명을 강제 출국시키면서 평화축제가 무산됐지만 현지에서 한국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이었다. 이런 위험성을 알고도 아프가니스탄으로 출국한 샘물교회 선교단에게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2007년 7월 26일 오전 샘물교회 한 교인이 본당 바닥에 주저 앉아 기도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2007년 7월 26일 오전 샘물교회 한 교인이 본당 바닥에 주저 앉아 기도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이때문에 정부는 샘물교회 측에 정부가 구출을 위해 쓴 비용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고려했다. 석방된 인질 항공료, 후송 과정에 동원된 의료 헬기 사용료 등으로 정부가 사용한 비용은 1억원으로 추산됐다. 이중 정부는 샘물교회에 약 6만2000달러(당시 5693만원)을 상환하도록 요구했다. 당시 샘물교회 측은 "검토가 끝나는 상환하겠다. 비용은 교인들의 성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인터넷 포탈 '야후'는 "이번 사태 과정에서 발생한 제반 비용이 얼마이고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해 8월 31일 오후 5시 기준으로 전체 응답자의 75%(2만4143명)가 '샘물교회가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본인 또는 가족이 부담'이 20%(6483명)였고,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5%(1555명)에 불과했다. 이를 보면 당시에 샘물교회 사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동영상. [알자지라 방송 캡처]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동영상. [알자지라 방송 캡처]

후일 특전사 대테러요원들이 아프간 현지에 급파되어 인질구출작전 준비를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협상타결로 인질들이 석방되어 실제 작전 투입은 없었지만 구출계획 구상을 위한 억류지역의 지형정보 조사, 탈레반 무장세력의 이동 경로 및 은거지, 동향 등의 첩보수집과 무기분석 등의 임무 수행이 인질의 무사생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전사 소속 장교 등 13명이 2008년 2월 28일 보국훈장과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았다.

이 일이 있은지 3년이 지난 2010년 7월 27일 탈레반에 의해 납치 살해된 희생자 유족이 "정부의 재외국민에 보호의무위반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2011년 4월 26일 법원은 "국가가 배상할 필요 없다"라고 판결했다.

정우영 인턴기자 chung.w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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