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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승일의 시시각각

‘착한 성장’의 정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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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홍승일 수석논설위원

탈원전 정책 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감명 깊게 관람했다는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가 떠오르듯이, 현 정부 국정철학인 ‘착한 성장’은 히말라야 기슭 은둔의 소국 부탄을 연상케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히말라야 장기 트레킹을 갔다가 부탄에서 만난 체링 톱게 총리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한 최빈국이지만 대다수 국민이 안분지족한다는 ‘국민행복’의 모범국가 스토리였다. 문 대통령은 5월 당선 직후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GNH) 같은 걸 만들어 보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삶의 질’ 대통령 분배철학에 공감하나 #행복지수에 꽂혀 GDP 푸대접은 말길

‘착한 성장’이란 말이 나온 건 지난 11일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빈부 양극화를 낳은 성장지상주의가 ‘못된 성장’이라면 분배를 크게 강화한 것이 ‘착한 성장’이다. “2%대 후반의 현재 성장률 정도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면, 저성장 시대는 현 정부 아래서 받아들여야 할 상수(常數)이지 극복할 변수 같지는 않다. 이 대목에서 또다시 부탄이 떠올랐다.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김 보좌관은 같은 교수 출신 주축의 10여 명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사회적 약자를 함께 끌어안고 갈 ‘포용국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담았다. ‘착한 성장’ ‘포용국가’ 같은 개념은 대통령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착한 성장’이 꿈꾸는 세상은 사람 중심 경제, 임금 주도 성장, 성장·분배의 균형, 삶의 질 향상이다. 이들을 마다할 사람은 없겠으나 문제는 나라 안팎의 역경이다. 고령화·저출산으로 꺼져가는 성장동력, 미국의 보호무역을 뚫고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느냐다. 더욱이 문 대통령이 택한 소득주도 국민성장은 업종으로 치면 전통산업이 아니라 벤처사업에 속한다. 전통 경제학이 아니라 비주류 경제학이란 이야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계를 노정하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같은 석학들이 달려들어 이론화했으나 이를 본격 도입한 나라는 없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교수 시절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고도성장 축제는 끝났다” “대기업 낙수(落水)효과는 거대한 허구”라고 설파했다. 그렇다고 저소득층 소득 보전 정책이 소비진작과 투자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분수(噴水)효과를 충분히 내는지는 역시 분명치 않다.

‘착한 성장’을 택하면 정부 차원의 성장률 목표는 내걸 필요가 없다. 아등바등 더 커보겠다는 국민적 투지가 약해질 수 있다. 수출입국의 개방경제, 박정희 대통령 개발연대 이후 대기업 주도 성장드라이브 기조의 일대 전환이다. 자, 그렇다면 11년째 3만 달러 벽에 가로막힌 1인당 국민소득은 ‘이 정도가 우리 실력인가’ 자인하고 순순히 물러날 것인지, 또 지지부진한 작금의 2%대 성장률만 잘 지켜도 국가운용 백년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건지, 이거야말로 공론화위원회라도 만들어 철저히 따져 볼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마저 처음으로 3% 아래(2.8~2.9%)로 떨어졌다. 핀란드 대통령을 지낸 타르야 할로넨처럼 “국내총생산(GDP)의 독재시대를 끝내자”는 GDP 무용론자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사정이 다른 핀란드 이야기다. 인구가 1000만 명이 되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소득과 사회복지를 자랑하는 스칸디나비아 세 강소국의 일원이다. 부탄처럼 국민행복지수 열심히 챙기느라 대한민국 성장신화의 자랑스러운 성적표, GDP까지 갑자기 홀대하진 말기를 바란다.

홍승일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