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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도 칸쿠로의 아이러니한 세계, '타이거 앤 드래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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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일본의 전통 기예 중 ‘라쿠고(落語)’란 장르가 있다. “옛날 옛적에 말이야, 김수한무와 두루미가…”로 시작하는 일종의 만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라쿠고는 무대에 예능인 라쿠고가(落語家), 단 한 사람이 올라앉아 그 어떤 무대연출이나 음향효과도 없이 재기 넘치는 입담과 연기만으로 공연을 이끌어간다.

같은 레퍼토리여도 어떤 라쿠고가가 공연하느냐에 따라 목소리의 크기, 톤의 높낮이, 추임새의 순간까지 다르다. 그러다 보니 그 실력에 따른 인기 또한 천양지차. 열연하지 않는 라쿠고가는 없다지만, TV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이가 있는 반면, 스타를 꿈꾸다 낙오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전통을 승계하는 태도만큼이나 그것들을 비트는 데도 일가견이 있는 일본이니만큼, 라쿠고 역시 현대로 넘어오며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 소재로 쓰였다. ‘타이거 & 드래곤’(2005, TBS) 또한 라쿠고의 세계를 다룬 TV 드라마다. 신기하면서도 생소한 라쿠고가라는 직업군에 대해 풍성한 사유를 취하는 좋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야쿠자로 살아온 남자가 있다. 타고난 주먹과 배짱, 먹어주는 흉포한 인상까지…. 심지어 이름조차 호랑이[虎]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온 ‘토라지’다. 이 정도면 건달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할 정도다.

토라지는 젊은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꽤 큰 조직의 중간 보스 자리에까지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사채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토라지는 도주하던 채무자가 라쿠고 극장으로 들어서는 걸 목격한다. “잡았다, 요놈!”하는 심정으로 극장으로 들어서는 토라지.

헌데 그가 쫓던 채무자가 무대 위에 앉아 공연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원래의 그라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놈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릴 법도 하건만, 토라지는 그러지 않는다. 달랑 부채 하나만을 든 늙은이가 좌중을 압도한다. 극장 내 모든 공기가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들썩거린다. 토라지는 감동해버리고 만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바르르 떨며 토라지를 맞이하는 채무자. 말까지 더듬으며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애원하는데, 토라지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한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스승님!”

‘타이거 & 드래곤’은 일본 코미디계의 거물이자 천재작가로 알려진 쿠도 칸쿠로, 일명 ‘쿠도 칸’의 작품이다. 기상천외, 요절복통 그러다 뭔가 턱, 넋을 빼게 만드는 그의 솜씨는 늘 아이러니를 기저에 깔고 있다. 극장판 영화까지 나온 TV 드라마 ‘키사라즈 캣츠아이’(2002, TBS)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지만 계속 죽음이 닥치지 않아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청춘 이야기였고 ‘자만 형사’(2010, TBS)는 언제나 3초 만에 사랑에 빠지는 형사가 매번 연애 상대를 체포하고 실연당하는 얘기였으며, ‘나는 주부로소이다’(2006, TBS)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몸에 무려 일본의 대문호 나츠메 소세키가 빙의된다는 코미디였다.

‘타이거 & 드래곤’의 ‘낮에는 엘리트 야쿠자, 밤에는 늦깎이 만담가’라는 컨셉트 또한 ‘아이러니한 쿠도 칸의 세계’라는 자장 안에 맥을 같이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기에 덧붙여진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통해 세계관의 확장을 시도한다는 것.

없는 재능 대신 남들보다 열 배, 스무 배 열심히 라쿠고를 공부하는 토라지. 그런 토라지 앞에 숙명의 라이벌이 등장한다. 스승의 아들이자 만담의 천재, 류지(용(龍)의 일본어 발음에서 따온 이름)다. 같은 개그도 류지가 시도하면 기립박수가 터지는데, 토라지가 하면 어린아이들은 무서워 눈물을 흘린다. 열등감은 토라지의 동력이 되고, 그는 자신만의 라쿠고를 위해 더욱 이를 악문다.

하지만 류지는 토라지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사실 라쿠고에 관심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라쿠고 집안에서 자라나 당연하게 해왔던 라쿠고. 영재, 천재 소리 들으며 자라왔지만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수록 류지 스스로는 재미가 없었다.

그는 그냥 남들처럼 살고 싶다. 신주쿠에서 옷 장사나 하며 친구들과 재미나게 지내는 게 꿈이다. 문제는 그에겐 옷 장사를 할 정도의 패션센스가 없다는 것. 아니, 실은 류지의 감각은 평균 이하에 가깝다. 신은 그에게 라쿠고의 재능만을 부여했던 것이다.

‘타이거 & 드래곤’은 그렇게 ‘다른 의미’로 용호상박인 두 젊은이를 따라간다.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이 생각나기도 하고, 영화 ‘아마데우스’(1984, 밀로스 포먼 감독)의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사가 하나씩 빠진 인물들이긴 하지만, 두 주인공 모두에게 정이 간다.

투박하지만 열정적인 토라지, 심드렁한 척 착한 심성의 류지. 둘의 일상이 모두 행복해지길 바라게 된다. 쿠도 칸의 작품들은 늘 그랬다. 어떤 장르의 어떤 이야기를 그리건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코미디는 그런 그의 관심사를 에둘러 표현하는 최적의 도구였고.

드라마의 한 토막. 스승이 토라지에게 묻는다. “근데 왜 라쿠고를 배우고 싶은 거야? 평생 한 번 본 적도 없었다더니?”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다가 스승님 하시는 거 처음 봤는데…, 엄청 웃기더라고요.” “근데?” “아, 저는 평생 웃어 본적이 없었거든요.”

글=한준희 영화감독. '차이나타운'(2015) 연출. 영화를 보고, 쓰고,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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