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의 탄생] 베르나르 베르베르 데뷔작 『개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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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출간된 『개미』 초판 표지.

1993 출간된 『개미』 초판 표지.

우리나라에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6)가 이름을 알린 건 1993년이다. 그해 6월 베르베르의 데뷔작 『개미』가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개미』는 91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됐다. 법학과 언론학을 공부하고 잡지 기자로 활동했던 베르베르가 나이 서른에 내놓은 첫 작품이다. 출간 후 프랑스에서 팔린 『개미』는 연간 5만 권 정도였다. 인기작이긴 했지만 폭발적인 화제작은 아니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베르베르는 여전히 미지의 신인작가였다. 선뜻 저작권 구매에 나서는 국내 출판사는 없었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홍지웅(63) 대표에게 저작권중개업체 신원에이전시가 『개미』를 소개한 건 92년 말의 일이다. 철학과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홍 대표는 “불어를 못해 『개미』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표지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대 불어교육과 출신의 이세욱(55)씨에게 내용 검토를 부탁했다. 고교 교사였던 이씨는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돼 당시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씨의 반응은 “재미있다”였다. 『개미』는 추리 소설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 과학책 이상의 과학 지식을 담고 있었다.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판단, 출간을 결정했다.
문제는 ‘무명작가’ 베르베르의 이름을 어떻게 알리느냐였다. 『개미』 출간 전 홍 대표는 타블로이드판 신간예고지 ‘북캐스트’를 만들어 93년 5월 1일 첫 호 1면에 베르베르 소개 기사를 실었다. 지면의 절반 정도는 베르베르의 얼굴 사진으로 채웠다. 그리고 이를 들고 서울 시내 대학가로 가서 열린책들의 기존 재고서적 1권씩과 함께 나눠줬다. 홍 대표는 “‘북캐스트’만 뿌리면 안 받아갈 것 같아 재고도서를 3만 부 정도 풀었다. 대학생들이 줄을 서서 받아갔고, 베르베르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의 천재형 외모도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한몫 톡톡히 했다.

'북캐스트' 1호 1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사진 열린책들]

'북캐스트' 1호 1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사진 열린책들]

출간 한 달만에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한 『개미』는 지금까지 200만부 넘게 팔렸고, 이후 출간된 『뇌』『나무』『신』 등도 줄줄이 밀리언셀러로 기록됐다. 지난달 출간된 신작 『잠』도 한 달 동안 20만 부 넘게 팔렸다. 베르베르는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프랑스 작가가 됐고, 『개미』를 검토하고 번역한 이세욱씨는 스타 번역가의 반열에 올랐다. 또 홍 대표의 이름 ‘지웅’은 『개미』 3부 『개미혁명』의 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자신을 알아보고 키워준 출판인에 대해 작가가 보내는 마음의 표시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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