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눈빛 닮은 길고양이, 왜 미워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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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하연 작가는 “숨이 간신히 붙어있는 길고양이를 구조했지만 결국 안락사시켰을 때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사람들이 길고양이에 대해 공생해야 할 생명체란 인식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김하연 작가는 “숨이 간신히 붙어있는 길고양이를 구조했지만 결국 안락사시켰을 때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사람들이 길고양이에 대해 공생해야 할 생명체란 인식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사진작가 김하연(47)씨는 10년 넘게 길고양이만 찍고 있다. 이른바 길고양이 전문사진작가다.

10년 넘게 길냥이 찍는 김하연씨 #새벽 신문 돌리며 사료 주고 찰칵 #사진전 40차례, 책 내고 다큐 출연 #“측은지심 들어 눈물만 늘었네요”

그의 사진에는 사람들을 피해다니느라, 주린 배를 채우느라 뒷골목을 헤매는 길고양이들의 외롭고 고단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이를 찍기 위해 새벽에 차밑이나 남의 집 담장을 기웃거리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부지기수다.

김씨는 길고양이들의 현실을 여과없이 담은 사진들로 지금까지 40여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이달 초부터는 서울·부산·옥천·대전 등에서 그의 사진전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뿐만이 아니다.

그는 2014년 길고양이들의 일상을 담은 책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를 냈고, 지난 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1년까지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그는 현재 서울 지역의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며, 사진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갖고 싶던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면서 작가의 길로 접어든 그는 우연히 카메라 앵글에 들어온 길고양이가 자신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어느 날 담장 위 길고양이를 찍게 됐는데, 피곤에 절어있는 깊은 눈빛이 사람을 닮아 있었어요. ‘우린 괜찮으니까 너희는 너희대로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했죠. 자식들에 부담주려 하지 않는 부모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그때부터 길고양이 표정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06년 길고양이 사진들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작품 속 고양이들은 지저분하고 병들고 겁먹은 표정이지만, 짜증내거나 투덜대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삶을 견뎌낸다. ‘고양이는 고양이다’ ‘화양연화’ ‘구사일생’ ‘너는 나다’ 등 그의 개인전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다.

김씨는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며 50여 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준다. 주로 그때 길고양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가슴 아픈 작별을 할 때도 많다. 로드킬 등으로 숨진 길고양이 사체수습도 그의 몫이기 때문. 그가 검은 봉투와 호미를 늘 갖고 다니는 이유다. 지금까지 수습한 길고양이 사체는 600여 구에 달한다.

“우리 길고양이들은 다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대만과 일본의 길고양이처럼 예쁜 표정이 나오지 않아요. 오해와 혐오에서 비롯된 학대, 굶주림, 로드킬 등 현실이 너무 비참해서죠. 길 위에서 태어나 3년 정도 살다가 죽어선 폐기물 취급을 받아요. 난 아직도 길고양이 삶을 10분의 1도 못 담아낸다고 생각합니다. 슬픈 사연을 남기고 죽은 길고양이는 꼭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이 일을 하며 눈물만 늘었어요.”

그가 길고양이의 삶을 기록하는 건, 사랑해서가 아니라 ‘측은지심’ 때문이다. “한 스님이 전시회 방명록에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본성인 측은지심은 나와 다른 생명체라도 눈을 맞추고 너 힘들구나 라고 말을 건네는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란 글을 남기고 가셨죠.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울컥했어요. 길고양이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 길고양이 삶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그는 “길고양이가 사람을 피해다니고, 일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밤에만 사료를 주는 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동물이 학대받고 고통받으며 사는 나라에선 사람 또한 대접받으며 살아가기 힘들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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