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가 미술관으로 가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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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14면

DDP 디올전(2015) 포스터, D뮤지엄 에르메스전(2016) 포스터, 교토국립근대미술관 반클리프아펠전(2017)

DDP 디올전(2015) 포스터, D뮤지엄 에르메스전(2016) 포스터, 교토국립근대미술관 반클리프아펠전(2017)

5년 전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스와롭스키’ 전시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명품 브랜드를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기획이 신기하고 참신했다. ‘빛나는 환상(영어로는 Sparkling Secrets)’이라는 전시 타이틀도 멋졌다. 잘 준비된 전시였고 관람객 호응도 좋아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 스토리텔링 마케팅

2014년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샤넬 전시가 있었다. 제품보다는 가브리엘 샤넬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전시였다. 전시 타이틀은 ‘장소의 정신’. 샤넬의 부흥을 이끈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명작’들과 넘버 5 향수병에 눈길을 빼앗길 때가 많았지만, 밀레의 드로잉·로트렉의 판화·드가의 조각·달리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같은 장소에서 ‘디올 정신(Esprit Dior)’이라는 전시가 있었다(샤넬 전시는 영문 타이틀이 ‘Senses of Places’였고 직역하면 ‘장소의 감각’이므로 절대 디올이 따라했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물질주의를 희석하려는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말에는 에르메스의 전시 ‘파리지앵의 산책’이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있었고 역시 뜨거운 반응과 함께 전시관람 사진이 인스타그램을 도배했다.

그리고 올여름, 명품 브랜드들의 서울 전시가 다시 화제다. 매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루이 비통은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라는 타이틀의 전시를 DDP에서, 그리고 2년 만에 돌아온 샤넬은 이번에는 ‘마드모아젤 프리베’라는 이름으로 오트 쿠튀르와 향수, 그리고 하이 주얼리를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2015년 런던 전시의 서울 버전이며, 장소는 지난해 에르메스가 전시를 했던 디뮤지엄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이세이 미야케(Miyake Issey)는 지난해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다. 발렌시아가는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V&A) 뮤지엄에서, 디올은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금년에 전시를 할 예정이다. 알렉산더 맥퀸 회고전을 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올해는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 전시를 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이미 구겐하임, 루브르 등 거물급 미술관들이 이브생 로랑 같은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지만,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의 미술관 전시가 이토록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가 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미술관 전시는 프리미엄 전략의 정수

명품 마케팅의 핵심은 ‘럭셔리’,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에 있다. 그리고 슈퍼 럭셔리 브랜드의 미술관 전시는 이들의 프리미엄 전략을 모방하고 있는 신생 후발 브랜드들의 추격의지를 꺾어 놓을 만한 파워풀한 마케팅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DDP에서 진행 중인 루이 비통 전시가 150년 역사를 뽐내며 굳이 연대순으로 디스플레이를 해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전시 마케팅은 요즘 각광받는 ‘경험 마케팅(experience marketing)’과 ‘고객 인게이지먼트(customer enagement)’의 가장 세련된 포맷이다. 감각적 요소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궁극적으로 구매행동을 유도하는 고도의 스토리텔링 기법인 것이다. 미국전시산업연구원(CEIR)은 미국의 경우 전시회 예산이 마케팅 전체 예산의 약 14%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명품 브랜드의 미술관 전시는 마케팅 효과 최고다. 그래서 입장료도 무료다.

소비자들의 ‘나르시시즘’ 자극

미술관 입장에서도 명품 브랜드 연계 전시는 나쁘지 않은 거래다. 피카소나 고흐, 샤갈 정도를 제외하고는 루이 비통 정도의 파워 브랜드 기획 전시를 열기가 쉽지 않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 덕에 단박에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대개의 경우 작품 설치와 홍보에 상당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언론의 전시 홍보 기사에 “현대 미술의 수호자” 혹은 “기념비적인(monumental) 전시”라는 낯 뜨거운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미술관과 명품 브랜드의 ‘공생’에 분개할 소비자는 없다. 소비자도 이런 전시를 좋아한다. 현대미술의 모호함과 뻔뻔함에 질린 관람객들은 재미있고, 어렵지 않고, 화려하고, 친절하고(사진도 마구 찍을 수 있게 해주고), 게다가 무료인 명품 전시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사전 예약도 하고, 회원가입도 하고, 앱도 기꺼이 다운로드 받는다. 『스펜트: 섹스, 진화 그리고 소비주의의 비밀』의 저자 제프리 밀러는 이러한 소비주의의 근원에 ‘나르시시즘(자기애)’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나르시시스트가 ‘지위 추구(외부에 과시)’와 ‘즐거움 추구(자기자극)’라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고 했는데, 명품 소비는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게 해 준다. 명품 브랜드 관람이 명품 소유 수준의 만족을 가져다 줄 리는 절대로 없지만, 현실도피나 일시적 욕망 해소(욕망의 부채질이라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혹은 대리만족의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

상업적 측면 강조하다 보면 비판 자초하기도

브랜드와 미술관, 관람객 모두가 바라는 전시인데도, 명품의 본고장인 유럽에서조차 미술관의 브랜드 전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너무 자주 하는 것도 문제고, 상업적인 냄새가 너무 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일본 교토의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반클리프 아펠의 전시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천년 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를 선택한 것도 좋고, 섬세한 일본 전통 공예품을 사이사이에 함께 전시해 기법을 비교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도 훌륭하다. 서울에서도 ‘브랜딩’ 이상의 의미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의 ‘명품 전시’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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