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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기 태워도 모독죄 처벌못해

중앙일보

입력

경찰은 앞으로 보수단체 등의 집회나 시위 때 인공기 등을 불태우는 행위를 막기로 했다. 그러나 소화기를 동원해 불을 끄거나 물품을 빼앗는 정도의 소극적인 방법 외에 현실적인 대응이 여의치 않아 고민이다.

현행법상 인공기 소각을 처벌할 근거는 마땅치 않다. 국내법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서다. 따라서 인공기를 태운 사람을 형법상 외국 국기.국장 모독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는 없다. 굳이 처벌하자면 형법상 '일반 물건에의 방화' 또는 집시법상 '방화 금지'조항을 적용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작은 물건을 불 태우는 데 불과한 행위를 방화로 대처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행위자를 처벌할 경우 국민 정서상 저항도 예상돼 간단치 않다. 그동안 단 한번도 이런 잣대로 시위자가 처벌된 사례는 없다.

경찰이 인공기 소각을 처음 제지한 건 부산 아시안게임 기간이던 지난해 10월이다. 6.25 납북인사 가족협의회원들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집회 도중 인공기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을 태우려 하자 집회장에 들어가 빼앗았다.

이어 지난 6월 2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 회원 11만명의 집회 때 일부 참석자가 몸 속에 숨겨온 인공기에 불을 붙이자 소화기로 껐다.

당시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위험 발생의 방지'조항을 강제 진화의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규모 집회에서 일일이 강제 진화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인공기를 태우지 않고 찢는다면 그야말로 경찰이 개입할 여지는 더욱 없어진다.

결국은 집회 주최자들의 자발적 협조가 필수라고 보고 이해와 설득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윤창희 기자thepl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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