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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사태' 조사한 금융위 자조단, 엔씨소프트 주식 거래 조사 착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바일 게임 ‘리니지 M’ 출시와 맞물린 엔씨소프트의 수상한 주식 거래를 놓고 금융당국이 전방위 조사에 착수했다.

엔씨소프트 부사장, 13ㆍ15일 8000주 매도 #20일 주가 11% 급락, 미리 팔아 4억 더 남겨 #금융위 자조단,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조사 #회사 측 “스톡옵션 행사금 마련하려 판 것” #20일 공매도량 6월 평균의 6배 웃돌아 #“의혹 가지만 미공개정보 이용 입증 어려워”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21일 주가 급락 직전 보유주식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얻은 엔씨소프트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자본시장조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가조작 엄단 지시로 2014년 9월 금융위 사무처장 직속으로 설치됐다. 금융위를 비롯해 한국거래소·금융감독원·검찰 등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 사태를 조사를 담당했던 곳이다.

자료: 엔씨소프트

자료: 엔씨소프트

유재훈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장은 "엔씨소프트의 불공정 거래 관련한 제보가 금융위를 비롯한 금융감독원 등에 다수 접수가 됐다"며 "효율적인 조사를 위해 자조단이 조사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금감원과 한국거래소도 보조를 맞췄다. 한국거래소는 대량으로 쏟아진 엔씨소프트 공매도 물량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한국거래소 조사 결과 20일 엔씨소프트 공매도 거래량은 19만6256주(거래 대금 762억4961만원)를 기록했다. 엔씨소프트가 2000년 6월 코스닥에 상장(2005년 5월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이래 일일 공매도 거래량으로는 최대 규모다. 최근 6개월간 일평균 공매도 거래량 1만8886주와 비교해 10배가 넘는다.

 김영춘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상무는 엔씨소프트 공매도 거래와 관련해 “집중 모니터링 중이며 내역에 대한 분석도 진행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 위반 사항이 있다고 의심되면 관계 당국에 분석 결과를 통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두영 금감원 부원장보는 “악재를 미리 알고 주식을 팔았다는 정황이 나오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상 ‘미공개 정보 이용행위의 금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난해 한미약품 사태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입(MMORPG)인 '리니지M'은 이날(21일) 0시 출시 이후 7시간 만에 애플 앱스토어 최고 매출 1위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넷마블게임즈의 ‘리니지2 레볼루션’이 8시간 만에 1위에 오른 것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리니지M은 지금의 엔씨소프트를 가능하게 한 PC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모바일 버전이다.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덕에 모바일로 탄생하는 리지니M에 대한 기대감은 말 그대로 ‘역대 최고급’이었다. 사전 예약자만 550만명이 몰렸다. 연초 24만8000원이던 주가는 지난 13일엔 42만6500원까지 올랐다. 올해 들어서만 60% 넘게 오른 셈이다.

 악재는 출시 전날인 20일 터졌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아이템 거래소 시스템을 제외한 채 게임이 출시된다는 소식이 퍼졌다. 아이템 거래소는 게임회사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캐시카우’다. 시장에서는 원작 리지니 게임을 즐겼던 이들이 ‘3040’ 직장인이 되면서 ‘현질(현금을 주고 아이템을 사는 행위)’ 규모 또한 커져 엔씨소프트의 이익 역시 급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정작 ‘앙꼬(아이템 거래소)’가 빠진 ‘찐빵(리지니M)’이 나온다는 얘기다.

 연일 상승하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20일 11.41% 급락했다.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1조원 넘게 증발했다. 엔씨소프트 주가가 10% 넘게 급락한 것은 2012년 11월 이후 약 4년 7개월 만이다.

 급락의 불을 끄고자 엔씨소프트는 20일 오후 3시 28분 장 마감 직전에 자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21일 리니지M 출시 당일에는 아이템 거래소가 빠지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아이템 거래소 시스템이 포함된 게임에 대한 심의를 요청해 접수했다”며 “아이템 거래소 시스템은 7월 5일 이전에 제공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 마감 뒤엔 최고개발책임자(CCO)인 배재현(46) 부사장이 보유 주식 8000주를 지난주 두 번에 걸쳐 전량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13일 4000주를 평균 40만6000원에, 15일에는 4000주를 평균 41만8087원에 팔았다. 8000주를 팔아 번 돈은 약 32억9635만원. 만약 주가가 급락한 20일 종가로 주식을 내다 팔았다면 손에 쥐는 금액은 28억8800만원에 그친다. 일찍 주식을 팔아 4억835만원을 더 벌었다.

 이에 대해 윤진원 엔씨소프트 글로벌커뮤니케이션실장은 “배 부사장은 보유하고 있는 스톡옵션(5만주) 중 일부를 행사하는데 필요한 납입금과 세금을 마련하고자 주식을 매도한 것”이라며 “스톡옵션 이후에는 더 많은 주식을 갖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톡옵션 행사 만기일은 2020년 2월 4일이다. 만기가 2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왜 하필 주가가 역대 고점을 기록하고 악재가 터지기 직전 주식 전량을 처분했느냐는 의문이다. 배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1일 이후 최근까지 주식을 단 한 주도 처분하지 않았다.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은 또 있다. 배 부사장이 처음 주식을 팔았던 지난 13일은 당초 예정됐던 리니지M 간담회가 돌연 취소된 날이다. 당시 게임업계에서는 “출시 전 대대적인 홍보 기회를 왜 스스로 차 버렸나”며 의아해했다. 현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아이템 거래소 관련한 질문이 쏟아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힘을 받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스톡옵션 취득을 위해 돈이 없었다면 주식담보대출을 받는 등 보유주식을 파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며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매지 말라는데 하필 악재가 알려지기 직전에 팔았기 때문에 의혹을 사도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공매도도 급증했다. 다만, 아직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코스피 시장에서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되려면 당일 공매도 거래 비중이 20% 이상이어야 하고, 공매도 비중 직전 40거래일 평균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해야 한다. 또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하락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제2의 한미약품’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약품 사태는 지난해 9월 29일 한미약품이 호재성 공시를 낸 뒤 이튿날인 30일 계약 해지 내용을 공시해 주가가 18% 폭락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한미약품이 고의적으로 장 개시 후 30분 뒤 악재를 공시해 미리 정보를 입수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회피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었지만 법의 칼날은 무뎠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한미약품과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내부 직원과 임원들은 집행유예 처분과 벌금(최고 4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매도 폭탄을 퍼부었을 것이라는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의혹은 밝혀내지 못했다. 악재성 공시가 나온 지난해 9월 30일 한미약품 공매도 물량은 10만4327주로 2010년 7월 상장 이래 최대치였다. 이중 절반 가량이 계약 해지 공시가 나오기 전에 이뤄졌다.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가 공매도 세력과 연관됐을 거란 의혹이 이어졌지만, 검찰 조사에서도 물증을 잡아내지 못했다. 결국 미공개 정보를 전화ㆍ메신저ㆍ구두로 전달받고 한미약품 주식을 팔아치워 손실을 회피한 개인 투자자 14명에게만 총 24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고란·조현숙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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