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리사이클 문화, 동양사상과 통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어령=미래에 대한 물음은 두 가지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다. 이번 한.중.일 30인 회의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전망하는 모임이 아니라 그것을 바꾸고 만들어가는 모임이다. 2년 전 우리의 구상이 실현된 것 같다.

▶우메하라=나는 오래전부터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 3국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EU에는 기독교라는 공통의 정신이 있다. 아시아 3국의 공통 문화는 벼농사를 하는 농경문화다. 밀농사와 목축을 하는 서양문화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문화라면 아시아 문화는 자연과 공생하는 문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명으로 아시아의 연대감을 강화해야 한다고 착안했다. 자연을 소중히 하는 아시아 문화는 21세기의 이상적 문명이 될 수 있다.

▶이=과거 서양에서는 밀을 수확할 때 이삭 부분만 베었다고 한다. 남은 밑동은 모두 가축 사료로 버려뒀다. 이는 필요한 것만 취하는 서양 사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볍씨는 껍질을 벗겨 밥을 짓고, 짚단은 가마나 새끼줄로 이용했다. '자연의 리사이클'이 벼 문화의 골자다. 우메하라 선생은 10년 전부터 황허(黃河)문명보다 앞선 중국의 창장(長江)문명을 주창하고, 그 발굴작업에도 참여했다.

▶우메하라=보통 황허문명의 시초를 4000년 전으로 잡는데, 벼 경작을 시작한 중국 남부의 창장문명은 이보다 1000년 앞섰다. 이 문화를 받아들인 한국과 일본은 벼 농작을 통해 국가를 만들었다. 벼 농작에는 물이 필요했고, 물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삼림을 조성해야 했다. 아시아의 '치산치수(治山治水) 정신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한국에선 사람이 죽는 것을 돌아간다고 한다. 죽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순환사상이다. 이런 사상은 동아시아의 사회자본인데도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시아주의를 내세워 서양과 대립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오랜 역사를 통해 아시아가 궁핍한 시절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였듯이 이번엔 서양을 위해 동양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다.

▶우메하라=일본 1만 엔권 지폐에 나오는 메이지(明治)시대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부국강병을 위해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탈아론(脫亞論)을 주창했다. 하지만 근대화에 성공한 오늘날 아시아는 다시 우리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이번 회의에선 경제 분야의 최첨단 문명들이 소개됐는데, 나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본다. 예컨대 환경을 배려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5000~6000년 전 동양사상과 연결된다. 특히 옛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중국 사람에게는 좋은 해법을 제시했다고 본다.

▶이=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은 심각한 환경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황사문제는 더 이상 중국 국내 문제가 아니다. 국가란 이웃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중.일은 싫든 좋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메하라=3국 문화의 또 다른 공통분모는 조상숭배 사상이다. 이 사상은 근대 핵가족화 과정에서 일본에선 많이 사라졌다. 한국에는 이런 도덕정신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한류를 일으킨 '겨울연가'에도 이런 효 사상이 녹아 있다. 일본인이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것은 무의식중에 조상숭배 정신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실제로 조상숭배 사상의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이=맞다. 오늘날 정보기술(IT)에서 생명공학(BT)으로 연구영역이 발전하고 있는데, 생명공학에서 탐구하는 DNA 연구는 결국 조상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문화와 정신은 배척이 아닌 융합.조화에 근거한다. 한자와 가나(かな)를 함께 사용하는 일본이나 한자와 한글을 조합해 쓰는 한국은 특히 융합의 정신을 중시한다. 일본의 초밥 문화를 보자. 날 생선을 먹는 조몬(繩文)문화와 쌀을 상징하는 야요이(彌生)문화, 여기에 회전초밥에 필요한 과학기술 등 3개의 시대가 섞여 있다. 이런 아시아의 포용적인 문화는 우리가 직면한 정치.경제적 갈등의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아시아의 문명과 지혜는 난관에 봉착한 서양문화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메하라=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동양의 지혜를 발신하자. 여기에 중국을 참여시키고, 더 나아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인도로까지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중국의 농업문명, 일본의 산업문명, 한국의 정보문명, 이 세 문명이 합쳐지면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정리=박소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