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9년만에 폐지, 중고교 3% 표집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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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매년 모든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온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올해부터 폐지된다. 교육부는 국정기획자문위의 제안에 따라 이달 20일 치르는 평가부터 일부 학교만 시험을 보는 '표집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중앙포토]

2008년부터 매년 모든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치러온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올해부터 폐지된다. 교육부는 국정기획자문위의 제안에 따라 이달 20일 치르는 평가부터 일부 학교만 시험을 보는 '표집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중앙포토]

이른바 ‘일제고사’로 불려온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시행 9년만에 사실상 폐지된다. 교육부는 14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제안을 수용해 올해부터 모든 학생이 아닌 일부 학생만 평가를 치르는 ‘표집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2008년 첫 시행 이후 찬반이 엇갈려온 문제인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이달 20일 평가부터 '전수 평가' 폐지 #교육청·학교별 성적 공개도 없어져 #"서열화 부작용 커" vs "학력진단 필요해"

당장 이달 20일 치르는 2017년 학업성취도평가부터 표집 평가가 도입된다. 지난해까지는 전국 모든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이 평가 대상이었지만 올해부터는 교육부가 선정한 표집 학교만 시험을 본다.

교육부는 전체 대상의 약 3%인 중학교 478곳(1만3649명), 고등학교 472곳(1만4997명)만 시험을 보게 할 계획이다. 단 올해는 이미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에, 시험 실시 여부를 교육청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표집 학교만 시험을 치른다. 국정기획위 신익현 전문위원은 “학생들의 학력 추이를 살펴보고 지역별, 학교별 특성을 파악해 교육과정에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3% 정도의 표집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는 학교 정보 공시 사이트(학교알리미)에 공개됐다. 각 학교별로 '보통학력 이상'(교육과정 50% 이상 이해), '기초학력'(20~50% 이해), '기초학력 미달'(20% 미만)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표집 평가로 바뀌면 정보 공시에서도 학업성취도평가 항목이 제외된다. 각 학교의 학력을 비교해 서열화할 수 있는 방법도 사라지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한 학업성취도평가는 출범 첫 해부터 학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비판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매년 반대 집회를 열었고, 일부 교사와 학생들은 시험을 거부하기도 했다.

일제고사 반대 시민모임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 [중앙포토]

일제고사 반대 시민모임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 [중앙포토]

특히 2014년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여론에 더욱 힘이 실렸다.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에 학업성취도평가 폐지를 꾸준히 요구했다. 국정기획위도 이번에 학업성취도평가를 표집 평가로 바꾸는 배경에 대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제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표집 평가 전환을 결정한 국정기획위와 교육부의 결단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학업성취도평가 반대론자들은 모든 학교가 평가를 받게 되면서 등수 경쟁이 과열되고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기출문제 풀이, 방과후 자습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우려한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학생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하지만 학생 개개인의 학력은 각 학교의 시험으로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경쟁을 부추기는 일제고사 방식은 부작용만 커진다”고 말했다.

학교가 학력 진단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표집 평가로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위한 학력 진단을 할 수 없다.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목표에도 어울리지 않는만큼 현장 의견을 듣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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