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과 추경 엇박자 우려 … 정부 “일자리 추경이라 과거 돈풀기와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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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재정정책이 특정 산업을 겨냥해 쓸 수 있는 ‘미사일’이라면 기준금리를 움직이는 통화정책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 ‘원자탄’이다. 미사일은 기획재정부가, 원자탄은 한국은행이 담당한다.

금리인하·추경 같이 간 이전과 달리 #가계빚·집값 과열 막으며 성장 추진 #일각 “경기 아직 불안, 금리인상 신중”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며 ‘긴축’을 예고하자 거시경제정책의 양대 수단인 통화·재정정책이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구상인 ‘제이(J)노믹스’의 핵심은 재정 확대다. 새 정부는 이미 일자리 확대용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하며 ‘돈풀기’를 하겠다는 태세다.

정부는 돈을 풀겠다는데, 한은은 돈줄을 죄겠다는 신호를 보내니 시장에서는 헷갈린다는 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한은이 긴축을 시사한 건 이례적이다. 대체로 과거 추경 편성 때를 보면 앞뒤로 기준금리 인하가 동반됐다. 지난해 기업 구조조정 여파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한은은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인하했다. 곧바로 다음달 정부도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재정과 통화의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 조합)’를 통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과거 추경은 당장 꺼진 경기를 살리려는 의도가 컸다. 재정·통화정책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었다. 올해 추경은 일자리 창출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추경 편성과 한은의 긴축 움직임은 모순적인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기재부 관계자는 “과거 추경 편성 당시는 재정만으로는 경기를 부양하기 어려워 금리정책의 지원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추경의 목적이 일자리로 한정돼 있어 금리 인하를 동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일자리 확대에 재정을 쓰는 동안 자금 유출 우려 등 금융 불안을 해소하고 부동산 과열을 관리하기 위해 한은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쓸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급격한 통화정책 변화는 재정 지출의 효과를 반감시킬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경을 하면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추경 효과는 당연히 떨어진다”며 “경기가 아직 불안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 총재는 13일 김 부총리 취임 이후 첫 만남을 갖고 재정·통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두 기관의 수장은 ‘재정과 통화의 역할론’에 의견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경환 전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4년 7월과 2015년 8월 2차례에 걸쳐 이 총재와 공개회동을 했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지난해 1월과 12월 이 총재를 만났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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